면책특권 뒤에 숨어… 유엔에 성폭력 난무

입력 2018-01-19 19:29

세계평화와 인권수호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에서조차 성폭력이 난무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유엔 전·현직 직원 수십명을 인터뷰해 유엔 내부 성폭력 문화 실태를 18일(현지시간) 고발했다. 인터뷰한 직원들 중 15명은 유엔에서 일하며 최근 5년 동안 성희롱에서 강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폭력을 경험했다. 이 중 각기 다른 유엔 산하기구에서 일하는 7명이 상부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계약해지 협박을 당했다. 가해자 처벌은 없었다.

세계식량계획(WFP)에서 일할 당시 성희롱을 당한 한 여성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사실상 커리어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다른 한 여성은 “의학적인 증거와 증언에도 불구하고 유엔은 내부 조사에서 내 주장의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직업과 비자를 잃고 스트레스로 병원 신세를 졌다”고 토로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계약직으로 일한 한 직원은 유엔난민기구(UNHCR)의 고위 간부에게서 술자리에 초대받고 성폭행을 당한 뒤 추천서를 써주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가디언은 유엔 내부 감찰기구에도 고위 관계자들의 세력이 뻗쳐 있다고 보도했다. 또 유엔 직원들은 취업 비자 및 학비 등 유엔에서 제공하는 혜택에 의존하며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 신고를 꺼린다고 전했다.

국제조직의 특성상 구체적인 혐의와 관할권을 밝히기가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다. 게다가 유엔 고위 간부들은 외교적 면책특권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해당 국가의 수사를 피할 수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