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보다 힘든 게 철거민 삶”… 용산참사 9주기, 그들은 지금

입력 2018-01-19 05:03

부친 잃은 이충연씨 현장 못 떠나
출소한 천주석씨도 세입자 신세
‘공동정범’ 개봉 앞두고 가슴앓이
내년 10주기엔 ‘눈물’ 닦아주길…


9년 전 아버지를 잃은 이충연(45)씨는 아직도 그 참혹한 현장 인근에 산다. 서울 용산구. 철거민 세입자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5명이 사망한 참사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 철거민을 돕다가 구속됐던 상도4동 철거주민 천주석(55)씨도 4년 전 출소한 뒤 상도동으로 돌아 왔다.

용산참사 9주기(20일)를 앞두고 17일 이씨와 천씨를 각각 만났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세입자이자 상처 받은 철거민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서울 구로구의 함바집(건설현장 식당)에서 만난 이씨는 여전히 세입자다. 지금 살고 있는 용산의 집도 재개발지역에 포함돼 다시 이사해야 할 형편이다. 그래도 9년 전 참사의 진상을 밝혀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용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함바집은 당시 함께 싸웠던 철거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곳이다.

용산참사의 ‘가해자’라는 딱지가 붙은 이씨는 3년9개월간 복역하다 2013년 특별사면을 받아 출소했다. 환기가 제대로 안 되는 독방에 오래 있었던 탓에 아직도 비염에 시달리고 있다. 결혼한 지 1년도 채 안 돼 남편을 교도소로 보내야 했던 아내는 홀로 이 시간을 버텼다.

이씨는 “철거민들도 대부분은 돈을 벌면 집을 사서 월세 받아먹고 살 거라 말한다”며 “자기가 먹고 살 만큼의 세를 받는 걸 떠나 더 많은 세를 받고 싶은 욕심, 개발로 집값이 조금이라도 더 오르길 바라는 욕심으로 억울하게 집을 잃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세입자를 소작농에 비유했다. 땅값이 계속 오르니 지주들은 계속 부자가 되고 소작농인 세입자들은 적은 소득을 쪼개 주거비를 지불한다. 지난 9년 동안 문제는 더 악화됐다.

돈 문제만은 아니다. 9년 전 참사는 용산 세입자들과 경찰 사이에서 벌어졌다. 집도 땅도 없는 이들은 언제든 국가권력에 거주지를 빼앗길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 그는 “누구든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이 지켜주는 주거권은 돈 있는 사람들의 소유권을 뜻할 뿐 실제 그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했다.

천씨를 만난 상도4동에는 그를 포함한 세입자 10여 가구가 아직 남아 있다. 2016년 용역과 마지막으로 충돌한 뒤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강제퇴거하지 않겠다는 증서를 받았다. 그래도 언제든 철거가 재개될지 몰라 이곳엔 긴장감이 여전했다.

천씨가 이곳을 지키려 나선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그는 도움 받을 사람이 없는 철거민의 심정을 알기에 용산 철거민들과 함께했다. 이씨와 함께 사면돼 출소한 천씨는 20대였던 자녀들이 30대가 되는 동안 아버지로서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다. 천씨는 “빵(교도소) 생활보다도 더 힘든 게 철거민의 삶”이라고 말했다.

천씨도 땅과 개발을 둘러싼 욕심과 희생을 얘기했다. 사람들은 집값이 오르길 바라지만 그 대가로 누군가는 비싼 값을 치르고 세를 내야 한다. 천씨는 “용산참사의 원인은 결국 정부와 개발사의 욕심이었다”며 “권력과 자본이 함께 만들어낸 용산참사와 같은 일을 막으려면 공권력이 함부로 나서지 않고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발사와 주민들 간 협의가 필요한 일에 공권력이 뛰어들면 모든 논의가 중단되고 국가의 힘에 개인은 압도당하기 마련이라는 지적이었다.

이씨와 천씨를 비롯한 용산참사 당사자 25명은 지난해 12월 사면복권됐다. 천씨는 “진상규명보다 사면장이 먼저 왔다”며 씁쓸히 웃었다. 이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때 광화문에서 선거운동을 하며 ‘대통령이 되면 용산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했었다”며 “그 약속을 10주기가 되기 전에 꼭 지켜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오는 25일에는 이씨와 천씨가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이 개봉한다. 용산참사로 범죄자가 됐던 5명이 2013년 출소 후 다시 만나 갈등을 겪는 이야기다. 원망의 대상은 당시의 권력자들이었지만 이들을 만날 수 없으니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렸다. 누가 더 큰 아픔을 겪었는지 다퉜다. 진상규명이 우선인 이들과 무너진 가정을 꾸리는 것이 먼저인 이들 사이의 간극도 컸다. 이씨는 “이제 서로 갈등을 봉합하고 10주기가 되기 전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