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를 향한 관심이 사그라들 때 먼저 다가온 건 신부님이셨어요.”
17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만난 김승하(39·여) 전국철도노동조합 조직국장과 민김종훈 대한성공회 신부는 오랜 친구처럼 다정해 보였다. 전날 대전지법(조정전담법관 정우정)에서 “종교계 중재안에 따라 KTX 해고 승무원은 원금의 5%인 1인당 432만원만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지급하라”는 권고가 나온 데 따른 안도감이 엿보였다.
그전까지 김 국장과 같은 해고 승무원 33명은 1인당 8640만원을 코레일에 내야 했다.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2심에서 이긴 승무원들은 4년간의 임금을 코레일로부터 받았지만 2015년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며 이를 모두 돌려줘야 했기 때문이다.
김 국장 등은 2004년 KTX 개통 1기 승무원으로 철도청 홍익회에 입사했다. 2006년 코레일관광개발이 생겨나며 280명 승무원은 해고됐고 김 국장 등 일부 승무원은 자회사로의 이직 권유를 거부한 채 코레일로의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10여년을 길거리에서 싸워 온 이들에게 8640만원은 감당하기 힘든 돈이었다. 대법원 판결 직후 세 살배기 아이 엄마였던 한 승무원은 몸을 던져 숨을 거두었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고통스러웠던 건 외면이었다. 삭발과 단식, 철탑 고공시위도 벌였지만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2015년 민김 신부가 힘겨워하던 김 국장을 찾았다. 민김 신부는 대림절과 사순절마다 서울 용산역에서 그들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김 국장은 “희망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노사가 평행선을 달릴 때 민김 신부 등 종단 실무진은 코레일과 협상 테이블에 나섰다. 협상 끝에 대한성공회서울교구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천주교서울대교구, 대한불교조계종 등 종교계 대표들의 서명이 들어간 중재안이 최근 도출됐고 법원과 노사가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김 국장은 “복직과 시민들 안전을 위해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코레일은 승무원을 외주화하며 적법한 도급임을 주장하기 위해 ‘열차 팀장은 안전, 승무원은 서비스 업무로 분리된다’는 논리를 폈고 이에 승무원에게 제한적인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김 국장은 “2013년 대구 KTX 사고 때 문을 열어 시민들 안전을 책임졌던 이들은 승무원”이라며 “안전은 외주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교회를 떠난 젊은이들까지 거리 기도회에 참여하는 것을 봤어요. 그들이 교회에 바라는 모습은 힘겨운 사회 현실을 마주하는 것 아닐까요. 종교는 반딧불이처럼 어두운 곳에서 작은 빛으로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민김 신부는 “삶의 현장에는 눈물과 사연이 있는데 이를 터부시한다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속삭임에 귀를 막는 것”이라며 승무원들이 복귀하는 날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KTX 해고 승무원 환급금 문제 해결 그 뒤엔 종교계가 있었다
입력 2018-01-19 00:01 수정 2018-01-19 1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