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라동철] 최저임금과의 동행

입력 2018-01-18 17:30 수정 2018-01-18 21:23

정초부터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인상이란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지적이 많이 들린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 7530원이다. 지난해(6470원)에 비해 1060원(16.4%) 올랐다.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예고한 상태라 논란은 갈수록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의 기반이자 극심한 소득 불균형 해소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고 밝혔다.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더라도 큰 폭의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첫해부터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 중에서 직원이나 아르바이트생을 감축하고 신규 고용 계획은 철회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인건비 증가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택한 고육책이다. 정부가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마련해 영세 사업주에게 직원 1인당 월 13만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신청이 저조하다. 고용보험 가입자라야 지원 대상인데 4대 보험료 부담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초 국정의 주요 과제로 최저임금 인상 안착을 꼽고 있다. 이를 통해 심각한 소득 양극화를 완화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꾀하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소득 양극화가 심각하다. 통계청·한국은행·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상위 20% 계층의 연평균 소득(6197만원)이 하위 20% 계층(875만원)의 7.06배다. 국내총생산(GDP)은 2006년 847조원에서 지난해 1637조원으로 2배 증가했는데 계층 간 소득 격차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30대 그룹의 사내 유보금은 720조원이 넘지만 투자나 고용 확대에는 인색하다. 성장의 과실이 아래로 흘러내리지 않는 동맥경화를 앓고 있다. 지난해 1인가구 노동자의 한 달 표준생계비가 216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최저임금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급격한 인상은 시장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속도조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오는 6월까지 결정하면 되는데 정부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시장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아울러 최저임금 인상이 ‘을’ 간의 전쟁이 되지 않도록 이윤 배분 구조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충격을 흡수할 보완장치들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 큰 폭 인상 기조는 유지될 수 없다.

정부는 저소득 노동자를 대상으로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의 일부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을 확대하고 신용카드 수수료를 인하하는 등의 지원책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의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공정한 시장질서 구축에 나서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프랜차이즈 본부와 가맹점 간 불공정 거래나 이윤 착취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강화해 소상공인의 임대료 부담도 덜어줘야 한다. 누진적 증세를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가는 것도 필요하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정기 상여금, 복리후생수당 등 고정적 급여를 포함시키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나누는 등의 노동개혁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특히 성장의 수혜를 상대적으로 많이 누려 온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들이 대승적 자세로 양보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노동자 등 경제 주체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나누고 공정한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대타협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도 이를 논의하고 추동할 사회적 대화기구가 가동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007년 펴낸 ‘장하준, 한국경제 길을 말하다’란 책에서 “어쩌면 지금 시기가 사회적 타협을 할 수 있는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10년이 흘렀지만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