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넬리 블라이 지음, 오수원 옮김 모던아카이브, 208쪽, 1만3000원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
넬리 블라이 지음, 김정민 옮김 모던아카이브, 304쪽, 1만4000원
“일부 국가에서는 여자아이를 죽이거나 노예로 판다. 쓸모가 없어서다. 우리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1885년 1월 미국 한 신문에 ‘여자아이가 무슨 쓸모가 있나’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에 실린 얘기다. 이런 극단적인 여성 혐오 표현이 신문에 버젓이 나오던 시절 이에 용감하게 반기를 드는 여성이 있었다.
넬리 블라이(1864∼1922)는 신문사에 반박문을 투고했고 선명한 논지와 독특한 문체를 높이 평가한 편집장은 그를 기자로 채용했다. 두 책은 그의 취재기 2권을 번역한 것이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이하 10일)은 뉴욕 정신병원에 10일간 잠입해 취재한 내용이다. 국내 초역이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이하 72일)은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의 소설 ‘80일간의 세계 일주’(1873)에 착안해 세계 일주를 한 모험담이다. 오래전 나왔다 절판됐던 책이다.
10일부터 펼쳤다. 블라이는 정신병자 연기로 병원에 들어가게 되고 이곳에서 환자들이 받는 온갖 학대를 목격한다. 간호사들은 말을 듣지 않는 환자의 머리카락을 뽑고 찬물이 담긴 욕조에 머리를 처박았다. 블라이는 이곳에서 “이 창녀 같은 년”이란 욕을 들으며 다른 환자들처럼 학대를 경험한다.
블라이는 환자들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을 보내면서 살벌한 병원 풍경을 눈에 선하게 그린다. 그의 취재기는 1887년 10월 9일 ‘뉴욕월드’ 1면을 장식했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 시 당국은 병원 예산을 연간 100만 달러 증액했다. 뉴욕월드는 ‘퓰리처상’을 만든 미국 신문인 조지프 퓰리처가 세운 신문사였다.
블라이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그가 6세 때 숨졌다. 블라이는 학비를 낼 수 없어 대학을 중퇴했다. 하지만 타고난 영민함과 도전 정신으로 여성에게 배타적이던 신문사 문을 두드렸고 기자가 돼 명성을 떨쳤다. 가장 유명한 취재는 ‘80일간의 세계 일주’ 주인공보다 일주일 빠른 72일 6시간11분14초 만에 세계 일주를 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 일주가 순조롭게 시작된 건 아니었다. 블라이가 회사 측에 이 제안을 했을 때 처음 돌아온 답은 “불가능하다. 이 일은 남자만 할 수 있다”였다. 그때 블라이는 “좋아요. 남자를 보내세요. 그럼 같은 날 제가 다른 신문사 대표로 출발해 그 남자를 이기고 말테니까”라고 했고 블라이는 1889년 11월 14일 여행을 시작한다.
72일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블라이가 당시 ‘80일간의 세계 일주’ 저자 베른을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조우하는 것이다. 베른은 블라이에게 자신의 소설 역시 세계 일주를 하는데 80일이 걸린다는 기사를 보고 구상했다고 한다. 헤어질 때 베른은 “79일 안에 세계 일주를 해낸다면 박수를 치겠다”고 인사한다.
약 1세기 전 시대상이 반영된 세계 일주기는 블라이 특유의 재치와 유머까지 곁들여져 상당히 재미있게 읽힌다. 이듬해 1월 26일 블라이는 자신이 소속된 ‘뉴욕월드’에 이 여행기를 게재했고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기자가 된다.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블라이.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땐 50세의 나이로 종군기자로 전장에 뛰어들었다.
두 취재기를 통해 이런 ‘열혈 기자’의 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자칫 ‘먼 나라 먼 사람’ 이야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블라이의 문제의식과 용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희망을 준다. 팁 하나. 취재기를 본격적으로 읽기 전, 책 끝에 첨부된 10여장 분량의 저자 소개를 먼저 살펴보자. 블라이의 생애와 취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책과 길] 열혈 기자의 기상천외한 탐험… 희망이 읽힌다
입력 2018-01-18 18:25 수정 2018-01-18 2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