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년여 만에 남측과 마주한 세 차례 협상 테이블에서 쓴 알쏭달쏭한 표현이 눈길을 끈다.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은 17일 남북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날씨가 잔풍”이라며 인사말을 건넸다. ‘잔풍(潺風)’은 잔잔하게 부는 바람으로, 요즘 남측에선 잘 사용되지 않는다.
전 부위원장은 이어 “‘6·15시대’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했다. 최근 남북 관계 분위기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오랜만의 화해 무드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특정 날짜 뒤에 ‘시대’라는 단어를 붙이는 방식은 북한식 표현이다.
북측 대표단은 지난 15일 실무접촉에서 “날씨가 별로 훈훈하다”고 말했다. 북한말로 ‘별로’는 우리말과 달리 ‘특별히’라는 뜻으로 쓰인다. “대교향악에 열렬히 공감하리라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대교향악’은 ‘대규모 관현악곡’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선 찬양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선군의 대교향악’ 등으로 이 단어를 쓴다.
북한은 지난 9일 남북 고위급 회담 종결회의에서 가장 격한 표현을 썼다. 남측이 ‘비핵화 문제’를 거론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오도되는 소리가 나오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고 좋지 않은 모양새를 가져올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잘못된 길로 이끈다’는 ‘오도(誤導)’라는 표현은 남측에선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다.
이 위원장은 당시 “결속발언문을 읽겠다”며 준비해온 발언문을 낭독하며 불만을 표출했다. 남한에서 한 덩어리로 묶는다는 의미의 ‘결속’을 그는 ‘마무리’의 뜻으로 썼다. 이 위원장은 ‘두 마음에 서로 도장을 찍는다’는 뜻으로 ‘양심상인(兩心相印)’이라는 북한의 사자성어를 쓰기도 했다.
북측 대표단이 생경한 표현을 쓰긴 하지만 남북 회담만 놓고 볼 때 남북 간 언어 이질화는 심각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정호성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장은 “북한은 남북 회담에서 일상어와 전문용어를 함께 쓰고 있는데 이질화는 40%보다 낮은 수준으로 보인다”며 “북한 주민들이 실생활에서 쓰는 말은 이보다 더 이질화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날씨 잔풍, 별로 훈훈, 대교향악…” 北대표단 ‘알쏭달쏭 표현’
입력 2018-01-18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