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성을 지르던 아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냉장고에 손을 대며 엄마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신발장으로 가 자그마한 신발을 들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물을 먹고 싶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산책하러 가고 싶다는 뜻이고요.”
엄마는 동시통역하듯 아이 행동에 담긴 뜻을 풀어냈다. 엄마가 다가서자 아이는 양팔을 들어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엄마의 손바닥이 자기 것과 맞닿는 순간 무미건조하던 아이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전엔 언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게 참 속상했는데 이젠 몸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해요. 수화(手話)가 아니라 신화(身話)로 얘기하는 셈이죠(웃음).”
지난 15일 경기도 광명의 한 주공아파트에서 만난 김윤성(11·다운증후군, 지적장애1급)군은 다부진 체격에도 불구하고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어머니 최효희(38)씨는 “아직 의사표현이 서툴러서 하루에도 서너 차례는 배변 실수를 한다”며 “특대형 기저귀를 쓰고 있는데 몸이 더 커지기 전에 대소변만이라도 잘 가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단기 목표”라고 했다.
윤성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깨달은 건 생후 7개월 때였다. 출산 후 ‘눈 사이가 조금 멀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최씨는 무럭무럭 잘 자라는 아들의 건강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뒤집기는커녕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윤성이를 보곤 결국 정밀검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검사결과는 다운증후군. 다행히 심장 기형은 아니었지만 윤성이는 유아기를 지나며 ‘지적장애1급’이란 꼬리표를 하나 더 붙여야 했다.
최씨는 아들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쓰리 잡 워킹맘’이 돼야 했다. 오전 오후는 회사 경리직원으로, 저녁엔 동네 호프집 아르바이트로, 윤성이를 재운 뒤에는 틈틈이 배워 둔 기술로 건축 설계도면을 그렸다.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일상을 힘겹게 보냈지만 든든한 울타리가 돼 줘야 할 가정엔 오히려 금이 생겼다. 남편과의 이혼, 친정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아들의 정서적 불안과 나빠지는 건강 상태 등이 최씨의 삶을 옥죄어 왔다.
“이렇게 이를 악물고 살아보려는데 왜 우리 가족에겐 불행뿐일까 싶어 삶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도 했어요. 그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아마 오늘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평소 친하게 지냈던 윤성이의 친구 엄마가 위로의 손을 내밀며 교회로 안내했다. 더디긴 했지만 신앙으로 마음을 추스른 최씨는 일 대신 가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급여가 적더라도 자신의 양육환경을 배려해주는 일터로 자리를 옮기고 저녁시간은 아르바이트 대신 아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 썼다. 최씨는 “두 살 터울의 동생 윤재(가명)가 듬직한 가장 노릇을 해줬다”고 말했다. 윤성이가 이따금씩 폭력적인 성향을 보일 때도 주먹을 보듬으며 자기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토닥인 것도 윤재였다. 매주 금요일 참석하는 철야예배 땐 둘도 없는 기도친구가 돼 준다.
최씨는 4개월 전 윤성이가 태어나 처음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던 날을 잊지 못한다. 지난해 9월부터 특수체육 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부쩍 인지기능이 좋아진 덕분이다. 하지만 치료를 지속하기는 녹록지 않다. 늘어난 부채로 매월 나가는 이자만 100여만원. 월급날이 돼도 통장은 항상 마이너스다.
“감기 한 번에도 며칠씩 입원해야 했던 윤성이가 겨울을 잘 나고 있는 게 제겐 새해 선물 같아요. 찬양시간마다 몸을 들썩이는 윤성이 입에서 찬양이 나온다면 하나님께도 귀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광명=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기적을 품은 아이들’ 2017년 10회차 막심 알리에프군 성금 보내주신 분(2017년 12월 14일∼2018년 1월 16일/ 단위: 원)
△배혜숙 20만 △김병윤(하람산업) 김전곤 최기상 지형국 박인숙 정민호 10만 △윤재흥 구세현 연용제 5만 △황성열 최광수 서도덕 정경숙 김덕수 3만 △김희수 황종권 정제성 전종환 2만 △김진일 김애선 1만 △권종선 5000
◇일시후원
KEB하나은행 303-890014-95604(예금주: 밀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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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품은 아이들 <1>] “말 못해도 찬양시간마다 몸을 들썩여요”
입력 2018-01-18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