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교제, ‘모금’ 우는소리하며 손 벌리거나 억지로 지갑 열지 말아야

입력 2018-01-18 00:01
해마다 겨울이면 거리에 등장하는 구세군 자선냄비는 가장 대표적인 한국교회의 모금 활동으로 꼽힌다. 새 책 ‘모금의 영성’은 우리가 흔히 보던 이 풍경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국민일보DB
교회나 선교단체가 사회복지 사역을 하거나 해외선교 활동을 할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모금’ 행위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인데, 첫 단계부터 타인에게 손 벌려야 하는 현실은 결코 달갑지 않다. 아쉬운 소리, 우는소리 하면서 손 벌리는 거 말고, 또 마지못해 지갑을 열거나 생색내면서 주는 것 외에 좋은 방법은 없을까.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은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구나 질문의 대답을 ‘상처 입은 치유자’로 불리는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에게 듣게 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더욱 가치 있다.

일단 모금에 대한 정의부터 다르다. 그는 “모금은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비전과 사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선포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이렇게 획기적인 정의에서 출발한 모금은 지금까지의 모금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나우웬은 심지어 모금이 재정이 필요하거나 보유한 사람 양쪽에 항상 ‘회심하라는 부르심’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돈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면, 사람들에게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점검하고 영적인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는 “사역의 한 형태인 모금은 설교나 기도, 환우를 위로하는 것,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만큼이나 영적인 활동”이라고 장담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을 돕는 매우 확고한 방법이 바로 모금이다.

모금을 하기 전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제다. 이 땅에서 우리의 안전 기반은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하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이는 돈 많은 사람에 대한 시각에 고스란히 투영되기 때문에 이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나우웬은 “우리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때에만 다른 사람에게 자유롭게 기부를 요청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 많은 사람을 질투하거나 그들의 재산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재정 후원을 요청해선 안 된다.

모금 행위는 곧 영적인 교제를 통한 공동체의 확장이다. 기부를 요청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종류의 교제와 소속감, 형제애와 자매애 등을 제공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러한 모금 사역을 통해 궁극적으로 우리는 각자의 소명을 확인하고 더 깊이 확신하는 단계에 들어선다. 이 과정에서 기도와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기도는 돈 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적대감과 의심이 아닌 환대로 여기도록 회심하게 돕는 영적 훈련”이라며 “감사는 이 회심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조”라고 말한다.

이 책은 1992년 9월 나우웬이 마르그리트 부르주아 가족봉사재단에서 모금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토대로 완성됐다. 그의 조교로 일했던 존 모갑갑과 헨리 나우웬 유산 신탁의 관계자들이 당시 강연 녹음을 다듬고, 나우웬의 저작 중 관련 문장 등을 찾아서 편집해 2010년 내놓은 책이다. 100쪽이 채 안 되지만 담고 있는 메시지는 신선하고 강력하다. 모금 행위에 대해 갖고 있던 고정 관념을 획기적으로 바꿔준다. 평소 모금 문제로 고민해 왔거나 앞으로 사역을 준비하면서 모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이들의 필독서라 할 만하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