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정을 실험 대상쯤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입력 2018-01-16 17:30 수정 2018-01-16 21:13
정부가 설익은 정책을 발표했다가 뒤집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27일 유치원·어린이집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를 발표했다가 16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번복했다.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하면 비싼 사교육 시장으로 몰리고 교육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반발이 잇따르자 사실상 백지화한 것이다. 투기 광풍을 불러온 가상화폐 대책과 관련해선 거래소 폐지라는 극약 처방을 꺼내들었다가 4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가상화폐 규제를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자가 20만명을 넘고 20, 30대 지지층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국정은 실험 대상이 아니다. 국민 개개인의 삶에 엄청난 파급력을 몰고 올 정책을 테스트하듯 불쑥 꺼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접어도 되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부동산 정책도 마찬가지다. 일을 벌여놓고 부작용이 일어나면 땜질하는 대증요법식 처방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 위반 업체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한다. 영세 자영업자의 80%가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못해 범법자가 되는 현실을 무시한 채 정책을 밀어붙이더니 안 지키면 신용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영향으로 청소·경비원 등의 해고가 잇따르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 등은 대학들을 찾아다니며 ‘사회적 책임감’에 읍소하고 있다. 근본 해법 없이 윽박지르고 달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지난해 세 차례 내놨던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대책은 강남 집값을 더 올려놨다. 공급 확대 없이 세금과 대출 규제로 실패했던 노무현정부를 보고도 똑같은 정책을 펴고 있으니 시장이 정부 생각과 반대로 가는 건 당연하다. 정부는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 이 사실을 국민들은 학습효과로 알고 있는데 정부만 모르고 있다.

문재인정부 들어 실험적 정책들이 쏟아지는 것은 청와대와 내각에 학자와 시민단체 출신들이 대거 포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이들이 상아탑에서 공부한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시대도 바뀌었다. 시장경제를 무시한 독주에 중심을 잡아줘야 할 정통 관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러니 ‘영혼 없는 공무원’ 소리를 듣고 불과 몇 개월 전 정책을 뒤집는 사례가 빈발하는 것 아닌가. 늘공(늘 공무원)들은 노무현정부 시절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정치에만 신경 쓰고 경제 마인드가 안 돼 있다”고 청와대 386세대 참모들을 견제한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철학도, 소신도 없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의식해 모든 문제를 선거 뒤로 미루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부처 간 엇박자와 어설픈 정책으로 대혼란을 일으켰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아마추어 정부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