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동 칼럼] 누가 강남으로 유혹하는가

입력 2018-01-16 18:27

지난해 6월 부동산연구소 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문재인정부 첫 부동산 정책이 발표된 후였다. “풍부한 유동자금과 투자욕망이 들끓고 있는데 한 번의 규제로 부동산 시장을 잡을 수는 없다. 부동산 투기는 욕망을 먹고 자라는 괴물이다. 규제로 쉽게 잡힐 괴물이 아니다.” 요지는 초장부터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머지않아 강남 일부 지역은 평당 1억원 시대를 찍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너무 앞서간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동 압구정동, 서초구 반포동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르면 내년에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귀띔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주위에 이 말을 전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정신 나간 부동산업자”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흐른 지금, 서글프게도 그의 예고는 적중하고 있다.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84.95㎡(25.6평)는 최근 25억원에 매매됐다. 개포 주공2단지를 재건축한 래미안 블레스티지 전용 84㎡ 분양권은 19억9900만원에 매물로 나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이 아파트 분양권은 18억2080만원에 거래됐다. 불과 한 달 만에 ‘억 소리’ 나는 호가 급등이 나타난 것이다. 자고 나면 수천만원씩 오르고, 압구정동 대치동 반포동 등 강남 일대 부동산중개업소에서는 번호표를 들고 매물 나오기만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줄지어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광풍(狂風)으로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왜 그럴까. 족집게처럼 예언한 부동산 전문가와 다시 통화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세가 나오자 주택 수 늘리기보다 ‘똘똘한 집 한 채’를 사자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가 폭등했고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가 발표될 땐 강남에 공급물량이 줄어든다는 불안감에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그의 답이다.

사실 2년 전부터 강남 부동산 폭등 조짐이 있었다고 한다. 부산 해운대와 세종시에서 부동산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지방 사람들이 너도나도 눈을 돌린 곳이 바로 강남이었다. 실탄이 풍부해진 이들은 서울의 부자들과 강남 선점에 나섰다. 풍부한 자금으로 생사를 건 ‘강남 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의 대출 규제는 주머니 속에 돈이 넘쳐나는 이들에겐 한낱 비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에는 다주택자를 옥죄는 정책에 투자 전망이 확실한 강남의 ‘똑똑한 한 채’만 갖자는 대응 심리가 더욱 뚜렷해졌고 4월 양도세가 중과되기 전에 지방의 주택을 처분하고 강남의 아파트에 올인하는 현상도 두드러졌다. 8·2 부동산 대책 이후 부산, 세종 등은 대체로 안정세를 보인 반면 서울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만은 0.69%나 뛴 이유 중 하나다.

펄펄 끓는 수요에 잇따른 정부의 교육제도 개편은 강남으로의 쏠림에 기름을 부었다. 작년 6월 자사고, 특목고 폐지 방침이 발표된 이후 가장 집값이 많이 오른 곳 가운데 하나가 사교육 1번지 대치동이었다. 여기에 최근 일반고와 특목고 입시를 동시에 치르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의 통과로 안정적인 명문 학군에 지원하려는 움직임은 짙어졌다. 우수한 일반고가 많은 강남 8학군 진입을 위해 이 지역 집을 알아보는 수요가 폭주하고 있다는 뜻이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미명하에 이뤄진 어설픈 정부의 정책이 특정 지역에 대한 선호도를 끌어올리는 데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수많은 개발 호재에다 정책까지 강남으로 들어오라고 유혹하는 꼴이다.

강남 집값 과열은 심리적이고 펀더멘털 측면이 더 강하다. 경제성장으로 돈 가진 사람이 많아지면서 자식들을 좋은 여건 속에서 공부시켜 명문대학에 보내고 싶고, 바둑판처럼 교통이 뚫려 있어 생활하기 편한 곳, 백화점과 고층 빌딩이 즐비한 곳에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도 자연스레 넘쳐난다. 대한민국 1%가 사는 곳에 대한 욕망으로 강남에 수요가 모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특별사법경찰의 몽둥이로 때려잡고 돈줄을 조인다고 꺾일 욕구가 아니라는 얘기다.

부동산 폭등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가뜩이나 일자리에 좌절하는 청년들에게는 미래 희망의 싹까지 자르는 사회악이다. 평생 안 쓰고 모아도 집을 살 수 없으니 2030세대가 가상화폐 열풍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정부 예측과 시장 반응이 엇박자가 자꾸 난다면 어디가 문제인지 정확히 진단해 봐야 한다. 좀 더 세련되고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 ‘강남이 불패(不敗)면 대통령도 불패’라는 노무현식 오기로는 절대 ‘강남 과열’을 잡을 수 없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