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가 공존하는 작품일 경우, 책을 먼저 선택하는 편이다. 한데 ‘예수는 역사다’는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다. 가까운 100주년기념교회에서 12월 31일 저녁 상영을 한다기에, 연말까지 퇴고를 마쳐야 한다며 작업에 몰두한 소설가 S를 흔들어서 같이 보러 갔다. 2017년을 3시간 남기고, 긴 대기 줄 속에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 스트로벨은 예일대 법대 출신의 명 저널리스트로 ‘사실만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는 인물이다.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던 아내가 예수를 사랑하는 것을 보자, 예수 부활이 허구임을 밝혀 기독교를 전면 부정할 야심을 키운다. 고고학적 증거, 기록적 증거, 목격자들의 증언, 심리학적 증거와 관련한 자료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그리고 예수가 무덤에서 사라진 것은 잠깐 기절했다가 깨어났기 때문이라는 기절설을 뒷받침할 의학적 증거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의사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땀샘에 피가 흐르는 혈한증, 십자가를 지고 갈 때 태형으로 찢겨진 살들로 인한 저혈량 쇼크, 손목에 못을 박았을 때의 중추신경을 뒤트는 고통, 십자가를 수직으로 세웠을 때 팔이 몇 인치씩 늘어나며 어깨가 탈골되는 현상 그리고 수직으로 선 상태에서 횡경막의 변화로 숨을 쉴 수 없어 질식사를 피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더구나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물이 나온 것은 사망 후 심장 주위에 액체가 고이는 늑막삼출 때문이라고, 즉 성경 기록과 의학적 견해의 일치점들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게다가 예수 부활을 본 증인들이 500명이나 되고, 고대의 다른 기록과 달리 신약성경의 사본은 5000권이 넘는데 대조할수록,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영화를 본 직후, 소설가 S의 감상을 물었다. “저렇게, 종교학자·역사학자·심리학자·의학자를 만나 수많은 학문적 계단을 밟고서도 눈으로 보고 자료를 확인해야 비로소 깨닫는 것이 서양식 사고 같아요. 한국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단숨에 끌어안는 DNA가 특히 발달해 있어요. 서양화와 달리, 동양화를 여백으로 완성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가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과 수많은 외국 선교사가 우리 땅에서 피를 많이 흘려야 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순교한 외국인들이 묻혀있는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이 바로 곁에 있었다.
이야기에 빠져 있는 사이, 금세 0시가 되었다. 앉아 있던 장소도 대화의 상대도 같았는데, 순식간에 2018년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시차에 따라 2018년을 맞이했다. AD가 생략된 2018년이었다. AD는 라틴어 ‘Anno Domini’의 약자로 ‘그리스도의 해’를 의미한다. 이처럼 서력기원이 된 예수가 역사가 아닐 방법이 도리어 없어 보였다. 앞으로 이 시간대 위에서 개인의 역사, 나라의 역사, 세계의 역사 그리고 영성의 역사가 계속 진행될 것이다.
새해도 보름이 지났다. 그 사이 영화로 보았던 책을 사서 읽었다. 무신론자였던 리 스트로벨은 그 후 목회자의 길을 걸었고, 이 책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의 집요한 추적으로 수집된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에 질리면서도, 뼈가 으스러지고 살이 찢기는 예수의 고통은 책에서 더 깊게 와닿았다. 새해에 우리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새해 첫날에는, 많은 이가 과거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끊어낼 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삶의 희망을 품었다. 그런데 끊어내야 했던 것은 그대로 이어져있고, 새로운 삶의 희망은 빠르게 퇴색하고 있다.
새해가 다시 헌 해와 비슷해지고 있다. 자기 개혁은 새해 첫날 종이위에 적은 결심이나 머릿속 생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해를 새해처럼 살기 위해서는, 매일 BC에서 AD로 넘어가는, 매일 새 사람의 기원이 필요한 모양이다. 새해가 보름이 지난 오늘, 오늘도 자신을 찢어야 새 날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김다은(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청사초롱-김다은] 보름이 지난 후에 맞는, 새해
입력 2018-01-16 17:33 수정 2018-01-16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