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대 폐쇄, 비리재단에 ‘1000억 대물림’ 해주는 꼴” 우려
입력 2018-01-16 21:27
“무조건 폐쇄 몰아붙인 것 아니냐”
7개 기관이 제출한 정상화계획서
사학분쟁조정위 심의 한 번도 안해
의대만 빼내기 정치적 노림수 의혹도
교수협의회 등 가처분신청 항고
교육부의 '폐쇄 명령'으로 전북 남원의 서남대가 폐교 수순을 밟고 있지만 이 결정을 둘러싼 논란과 파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교육부는 비리재단을 처단하겠다고 단호히 나섰지만 정작 비리재단에 1000억여원의 재산을 대물림해주는 결과만 낳고 있다는 우려가 높다. '무조건 폐쇄'라는 방향을 정해놓고 교육부가 몰아붙인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서남대 교수협의회 등이 "폐쇄 명령을 취소해 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내놓은 상태여서 결과가 주목된다.
1000억원 재산 구 재단에 고스란히 입금?
학교법인 서남학원이 해산하면 남은 재산은 정관에 따라 신경학원에 귀속될 예정이다. 신경학원은 333억여원의 횡령 혐의로 9년 6개월 형을 받고 복역중인 전 이사장 이홍하씨가 세운 학원이다. 신경대의 총장 직무대행은 이씨의 딸이다.
서남학원의 재산은 남원과 충남 아산의 캠퍼스, 남원의 병원 1곳, 광주의 병원 2곳 등이다. 합치면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재산 귀속을 막기 위해 유성엽 의원 등이 발의한 사립학교법 제35조 개정안이 국회 교육문화위원회를 통과했으나, 재산권 침해 논란과 최근 정당 상황 등으로 본회의 통과는 불투명하다.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교직원들의 임금 체불액 등 250억여원을 뺀 나머지는 모두 신경학원 금고로 들어간다.
이 같은 상황은 2013년 교육부의 묵인이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12년 12월 이씨가 구속된 뒤 이듬 해 12월 구 재단 이사들은 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은 청산 종결 뒤 신경학원 또는 서호학원에 귀속되도록 정관을 고쳤다. 그러나 교육부는 시정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임시이사가 파견되기 전 벌어진 일이다.
교육부가 구 재단을 옹호한 정황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6년 6월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냈다. 구 재단이 서남대 정상화 방안을 제출했다는 내용이었다. 2015년 서남대 살리기가 시작된 이후 명지의료재단을 비롯해 전주예수병원, 서울시립대, 삼육학원, 온종합병원, 고려병원과 ㈜부영주택 등 7곳이 정상화계획서를 냈지만 교육부가 계획서 제출 사실을 보도자료로 알려준 사례는 구 재단뿐이었다.
7차례의 ‘정상화계획서’ 제대로 검토했나
교육부는 7개 기관이 낸 정상화계획서를 꼼꼼히 검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심의를 올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모두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에서 판단해 반려(불수용) 처리했다.
교육부는 오락가락하며 신뢰를 잃기도 했다. 2016년 아산 캠퍼스를 구 재단에 넘기고 남원 캠퍼스는 제3자를 통해 정상화를 시키자는 ‘분리매각’ 방안을 허용했던 교육부는 서울시립대와 삼육학원이 이 방안에 적극 나서자 1년 뒤 이를 거부했다. 정부가 정상화 과정에 혼선만 끼친 모양새가 됐다.
지난달 11일 온병원이 낸 계획서는 이틀 만에 퇴짜를 놓았다. “191쪽에 이르는 계획서를 제대로 읽어나 봤냐”는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교육부는 ‘불수용’ 공문을 대학에 보내면서 관련 인증번호를 잘못 적기도 했다. 온병원의 서류는 ‘서남학원-154’였지만 공문에는 서울시립대와 삼육학원이 낸 서류 ‘서남학원-32’가 적혀 있었다. 지난달 20일 전주고려병원과 ㈜부영주택이 함께 낸 계획서는 살펴보지도 않고 돌려보냈다.
이재력 교육부 사립대학제도과장은 이에 대해 “그동안 (정상화계획서를 낸) 어느 곳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사분위에 심의를 상정하지 않고 모두 반려했다”며 “이 과정에서 잘 설명했다. 당사자들의 이의제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부와 수차례 협상을 했던 기관의 관계자는 “화석 같은 사람들이었다. 정상적인 학사운영이 가능한지 여부보다 명분이 없는 횡령액 원상회복 등에만 매몰되어 있었다”고 비난했다.
‘의대만 빼내기’ 정치권 노림수 있나?
지역에선 서남대 폐교에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남원에선 서남대가 폐교되면 의대 정원(49명)을 전남 목포대와 순천대가 흡수해 갈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다. 두 대학은 의대 설립에 노력해 왔고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줄곧 ‘의대 유치’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김철승 서남대 교수협의회장은 16일 “결과적으로 대안 없는 교육부의 폐쇄 결정이 비리 당사자들의 배만 불린 채 대학 구성원들의 집단 실직, 학생들의 편입학 혼란 등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학교 회생을 전제로 정상화계획서를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원=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