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진경애] 영어, 언제 시작해야 하나

입력 2018-01-15 18:00 수정 2018-01-16 10:20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공교육정상화법은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교육 관련 기관에서 교육과정에 앞서서 교육을 실시하는 ‘선행교육’을 규제하는 법이다. 그러나 법 제정 당시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영어 교과의 경우에는 예외 조항으로 2018년 2월 28일까지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 방과후학교 운영을 한시적으로 허용했고, 이제 예외 조항의 종료 시점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최근 공교육에서의 영어 교육의 시작 시기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영어 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효과적이라는 통념에 따라 정규 교육과정이 시작되는 3학년 이전에 자녀들에게 영어 선행학습과 사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취학 전 아동을 대상으로도 영어 사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영어 교육 시작 시기에 따른 효과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연구 결과가 있다. 영어에 처음 노출되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좋다는 통념은 언어 습득의 ‘결정적시기가설’에 근거한다. 결정적시기가설에 의하면 인간은 출생 후 13세까지 생물학적으로 언어 발달이 활발한 시기이며, 이 시기에는 뇌의 기능이 유연해 언어 기능이 좌뇌에 국한되는 측면화 현상이 확립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정적시기가설은 모국어 습득의 상황에서 연구가 시작됐으나 제2언어 습득 상황에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돼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제2언어 습득에 효과적인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연구는 연구 대상과 방법, 제2언어 학습을 처음 시작한 나이와 총 학습시간의 상호 작용 등에 따라 다양하고, 또 서로 상반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제2언어 습득 시기와 효과성의 관련성을 보는 연구는 주로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환경에서 영어 학습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것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같이 학교 교육을 통해 영어를 배우고 일상생활에서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 환경에서는 기존 연구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초등영어 교육은 1994년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제시한 외국어 강화 정책에 따라 1997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교육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학부모의 91.9%가 초등 영어 교육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에는 초등 영어 교육 강화를 위해 초등 1·2학년 영어 교육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으나 영어 교육 시기를 앞당기기보다는 초등학교 3, 4학년 주당 1시간, 5·6학년 주당 2시간을 각각 2시간과 3시간으로 늘려 학습시간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개정했다. 초등 영어 교육은 강화하되 영어 교육 시작 시기를 앞당길 경우 모국어인 국어 습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와 사교육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정책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초등 영어 교육과정은 영어의 기초인 알파벳을 익히고 낱말, 어휘, 문장 및 글을 듣고 이해하고 대화하고 쓰는 균형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생들이 영어를 미리 배우지 않아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기초적인 내용부터 가르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이 편성돼 있다. 따라서 교육과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면 정규 수업시간을 통해 학생들이 기초적인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함양할 수 있다.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이 영어에 흥미와 자신감을 갖고 교육과정의 학습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개별 학생의 학습 수준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맞춤형 수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영어 교육의 시작 시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습 격차가 없는 공정한 출발로 인한 학교 영어 수업의 정상화, 학교 영어 교육만으로 모든 학생이 초등 영어 교육과정의 목표에 도달하도록 하는 수업, 교사의 책무성 그리고 학교 영어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관심과 지원일 것이다.

진경애 교육과정평가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