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상화폐 컨트롤타워 없이 1년 넘게 ‘허송세월’
입력 2018-01-15 05:05
朴정부 때인 2016년 11월
관련 TF 처음 출범했지만
아직 법적 성격 정의 못해
과세 방안 여전히 논의 중
경제 사령탑은 뒷짐만 지고
사후 대책조차 지지부진
암호화폐(가상화폐) 정부 태스크포스(TF)는 박근혜정부 때인 2016년 11월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처음 출범했다. 이후 1년2개월이 지났지만 정부는 아직도 가상화폐의 법적 성격을 어떻게 정의할지, 세금을 어떻게 부과할지 구체적 방안을 만들지 못했다. 경제 현안을 책임질 정책 컨트롤타워는 불분명하고, 각 정부부처는 사후 대응에 급급한 난맥상이 재현되고 있다.
2016년 11월 출범한 가상화폐 TF의 공식 명칭은 ‘디지털통화 제도화 TF’였다. 가상화폐를 제도화하겠다는 의지까지 내비친 이름이다. 문재인정부보다 가상화폐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담고 있다. 이후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1분기까지 발표하려 했던 정책 방안은 계속 늦춰졌다. TF 회의는 지난해 상반기에 겨우 한 번 열렸다.
지난해 7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실태가 도마에 올랐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14일 “가상화폐 가격 추이 및 각국의 대응 방안을 지켜볼 필요가 있었고, 섣불리 방향을 잡았다가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었다”며 “정권 교체기에 빠른 대응이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가상화폐 관계기관 TF는 새 정부에서 지난해 9월 1일에야 첫 회의를 가졌다. 가상화폐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소비자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기본적으로 가상화폐 거래소를 유사수신으로 규제하고, 소비자보호 장치를 마련한 거래소에만 영업을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현실적으로 모든 거래소를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가상화폐의 규정 등 알맹이가 빠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의 ‘자세’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상화폐 가격은 치솟았다. 지난해 11월 26일 국내 비트코인 가격은 1000만원을 돌파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같은 달 28일 “심각한 병리 현상이 우려된다”고 지적하자 정부부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난달 28일 법무부는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특별법을 제안했다. 정부 TF도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 ‘정부 확정안’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면서 시장에 혼란을 줬다. 청와대가 서둘러 진화했지만 가상화폐의 성격은 무엇인지, 투기 과열 진정은 어느 수준인지 등을 놓고 정리된 정부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가 최근 한 달 간 대책들을 쏟아냈지만,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달 12일 1913만원에서 14일 오후 7시 기준 1923만원으로 요지부동이다.
경제 사령탑인 기획재정부가 가상화폐 이슈에 뒷짐만 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시각각 시장 상황이 변하는데 사전 대응은커녕 사후 대책조차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가상화폐 과세 검토는 이미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TF의 발표 자료에 담겨있었다. 기재부는 과세와 관련해 최근 국세청 등과 1차 회의만 마친 상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상화폐 성격부터 규정하는 등 통일된 입장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과세를 하려면 성격 규정부터 해야 하는데 지금은 기본이 안 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조금 더 사전적으로 거래 투명성 제고나 규제가 필요했다”며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는 너무 과하고, 투기적 부분이 다른 피해로 확대되지 않도록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