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비롯해 남북 관계 개선 등을 밝히면서 남북 관계가 전환점을 맞고 있다. 남북은 지난 9일 판문점에서 25개월 만에 고위급 대화를 갖고 대결 일색의 한반도 정세를 일단 대화 분위기로 돌려놓았다. 정부는 눈앞에 다가온 평창올림픽을 군사적 긴장 없이 치를 수 있게 되어 안도하는 분위기다. 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으로 치르기 위해, 또 경색된 남북 관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당연히 환영해야 할 일이다.
북한의 의도는 자명하다. 미국의 대북 강경 기조와 국제사회의 제재가 계속 강화되고 있고, 중국마저 압박 강도를 높이는 상황에서 돌파구 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한국 정부도 대화·제재 병행론을 주장하지만 현재는 제재 시점임을 강조해 온 상황에서 한국의 제재·압박 분위기를 완화시키고 평화 분위기 조성의 시혜자로 이미지를 개선하는 시도도 북한으로서는 고려할 만한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면전환 카드에는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과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핵·경제 병진 노선에 필요한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얽혀 있다. 전술적으로는 대미 협상을 통한 남한 봉쇄라는 통미봉남(通美封南)에서 한국과의 협상을 통한 통남봉미(通南封美)로 우회로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미 공조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또 남북 대화를 이용해 경제적 이득을 획득하고, 핵 능력 고도화의 시간도 벌고 국제사회의 압박 분위기도 완화시켜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국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성사된 남북 대화 재개를 바탕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보겠다는 것이 우리 정부 입장이다. 동상이몽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북핵 문제는 남북 문제를 넘어선 핵심적 국제 문제다. 남북 대화 추진에 몇 가지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더욱이 한국은 대화 상대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 점은 이번 회담을 궁극적으로 북핵 해결을 위한 촉매제로 삼으려는 우리 정부 의지와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우리 입장’이라는 말과 배치된다. 당장의 ‘긴장 완화’가 우리 정부가 바라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둘째, 한국에는 북핵 보유가 여전히 체제유지용이고 방어용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지나친 대미 공조가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는 시각이 대북 대화 추진의 동력으로 작용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북핵은 자위의 범주를 넘어서 이미 공격적으로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무자비한 핵 선제타격으로 ‘서울을 초토화’시키겠다는 북한의 핵 협박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셋째, 북핵 위협에 대한 안보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한·미 공조 체제에 손상이 생기면 안 된다. 일단 남북 대화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점은 공조 체제 유지라는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은 지난 20여년간 북한에 농락을 당했기 때문에 비핵화에 관한 한 북한을 끝까지 압박할 것이므로 한·미 간 이견이 불가피할 수 있다.
또 대북 성과에 조급하면 안 된다. 이번 합의문에 보면 남북 관계에서 제기된 ‘모든’ 문제를 남북이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한다는 내용이 있다. 필연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비핵화 문제, 대북제재 문제, 한·미 연합훈련 문제,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있어 과연 남북 공조가 국제 공조보다 한반도 비핵화에 유리할 것인지 되물어야 한다. 평창올림픽은 2월 말에 끝나는 이벤트성 행사이며, 김정은 위원장 책상에 핵 단추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전 남북 스포츠 외교의 뒤끝은 항상 북한의 도발로 점철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올림픽 참가라는 모자를 벗고 나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교수
[한반도포커스-강준영] 남북대화, 본질에 충실하자
입력 2018-01-14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