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시달리는 사립대병원 전공의들, 입 열면 진로 막막… 악순환 되풀이

입력 2018-01-14 21:01
대학병원에서 의사들 수련을 담당하는 교수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던 전공의들이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는 스스로 병원을 그만두는 방법이다. 전공의에 대한 평가와 전문 진료과목 선택에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수와의 관계가 깨진 상황에서 병원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평생 많은 피해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법의 선택은 쉽지 않다. 이미 외부에 알려져 다른 병원으로 옮겨 수련을 이어가기도 힘들고, 최소 7년 이상 이어온 전문의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 실제 한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A씨는 사건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후 병원을 나왔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다른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지 못하고 있다. 이동수련을 약속했던 병원들도 사건이 공개된 후 받아줄 수 없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A씨는 “폭행당한 전공의들은 의사사회에서 매장되고 꿈과 희망을 포기한다. 반면 가해자들은 과태료만 내면 된다. 꿈을 접지 않는 한 성폭행을 당하고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문제는 이동수련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체 248개 수련병원 중 국립대병원 수는 제한돼 있어 정부 조치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제도가 개선돼도 수련병원이 수용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또한 “국공립 의료기관이 아닌 한 민간수련병원이나 가해 전문의를 직접 제재하기는 어렵다. 이동수련제도를 포함해 최대한 실효성 있는 제도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방법은 수련병원 소속된 대학이나 의료기관이 인사권을 발휘해 가해교수와 피해전공의가 수련을 이어가는 상황을 해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다. 쿠키뉴스가 전공의 폭행사건이 발생한 대학 인사규정을 분석한 결과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 또는 금품비위, 성범죄 등 관련 법령에서 정하는 비위행위로 인해 감사원 및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조사나 수사 중인 사람 등의 경우 비위 정도에 따라 징계조치가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징계는 파면·해임·정직·감봉·견책 5단계로 정도에 따라 교원징계위원회에서 의결된다. 문제는 정직과 감봉의 경우 최대 3개월까지만 처분이 가능할 뿐 파면과 해임에 대한 기준은 별도로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성추행과 폭언문제로 2명의 전공의가 사직한 수도권 모 대학병원의 경우 1명의 가해교수는 휴직을, 다른 가해교수는 대학 산하 타 병원으로 옮겼다. 또 다른 병원은 사건의 중대함과 제도적 문제를 인식해 판결이 내려지기까지 가해교수의 직위를 무기한 해제하기로 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사립대병원의 경우 해당 대학의 배려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처럼 이목이 집중되지 않았다면 해임 등 중징계를 바라기는 어렵다. 결국 3개월 후 병원으로 복귀해 전공의들이 보복에 노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지금도 전공의들은 교수들의 폭행·폭언에 시달리면서도 입을 닫은채 알려지길 두려워한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책·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가해교수에게 조치를 취할 수 없다면 최소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된 공간에서 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오준엽 쿠키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