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현재에 대한 기록이다. 기사(Article)는 글이다. 단어와 문장, 문단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다른 글과 다를 바 없지만,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자 쓰인다는 점에서 '메시지(Message)'의 성격이 더 짙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기사란 무가치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이 글은 하나의 사안을 다룬 기승전결의 결(結), 그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마디에 위치해 있다. 보도 후 기사는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추적기 혹은 맥 빠진 실패기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해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국정감사 자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립목포병원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 대해 “충격적”이라며 개선을 약속했다. 이후 석 달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사실 이전과 이후에도 이 문제에 집중한 언론은 없었다. 최초 보도 이후 국감 과정에서 정부 부처의 내밀한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했지만, 실제 진행된 것은 글쎄…. 도통 신통치 않다.
◇“김 원장, 일 그렇게 하는 것 아니오”=김천태 국립목포병원장과의 만남은 지난해 9월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 원장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면서 “내성결핵전문치료센터가 건립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물론 그러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그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쫓아다니고 보건복지부에 예산지원을 읍소하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남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인근 식당에서였다. 그는 지쳐보였다. 기자에게 “잘 될 것”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 스스로도 기획재정부와 복지부가 신규 인력 확충과 새 센터 건립에 필요한 예산을 내놓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 했다. 기자가 나설 차례였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 기자는 이 일로 밥을 먹고 산다. 국립목포병원에서 하룻밤 기거하며 듣고 보았던 일들을 여러 개의 기사로 풀어냈다. 결핵 감염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거리 ‘1미터’는 독자와 기자의 거리이기도 하다.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느냐는 결국 이 1미터의 격차를 얼마나 줄이느냐에 있다. 그리고 그게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많이 썼다. 쓸 수 있는 한 많이 써서 최대한 절박한 상황을 알리고자 했다.
이렇게 수차례 국립목포병원에 대한 보도가 신문으로, 포털 사이트로 전해지자 반응이 조금씩 전해졌다. 일단 국회 쪽이 빨랐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러 의원 실에서 이 사안에 대한 인용을 하거나 질의를 해왔다. 협조할 수 있는 부분은 충분히 하고자 했다. 국감에서도 국립목포병원 실태는 계속 회자됐다. 그리고 박능후 장관은 국감에서 처우 개선을 약속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진통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최초 보도 후 복지부가 병원에 불편한 심기를 표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국립목포병원은 복지부 소속 병원이다. 언론보도로 열악한 환경을 여과 없이 내보내면 주무부서 얼굴에 X칠을 하는 것이라는 참으로 ‘공무원스러운’ 인식의 발로. 그러나 이를 그저 볼멘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었다. 김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압력이 없느냐 재차 물었다. 그는 거듭 “없다”, “괜찮다”고 ‘뻥’을 쳤다. 본인이 감수하겠다는 것이었겠지만, 당시 복지부 내부적으로 관련 회의가 열리는 등 험악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때까지만 해도 관련 예산 편성은 구체화돼지 않았다.
계속 보도가 진행됐던 것 때문인지, 운이 좋아서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잘 풀렸다. ‘함부로 나댄’ 병원장에 대한 ‘혹시 모를 불이익’도 아직까지 전해지진 않는다. 간호사 3명(8급), 간호조무사 6명(9급), 의사 1명(과장급, 4급) 등의 인력이 올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내성결핵전문치료센터 건립 기본계획 예산 3억원도 확정이 된 상태다. 물론 실제 건립에 소요되는 예산 500억원은 향후 절차를 거쳐 받아야 하지만 첫 삽으로선 나쁘지 않은 분위기일까?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 관계자는 최근 박능후 장관의 국립마산병원(결핵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립병원은 마산과 목포에 각각 1군데씩 있다) 방문 사실을 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산병원은 시설에 비해 인력이 부족해 안타까워 하셨다.” 그러면서 결핵문제에 대한 정책 마련 필요성 등을 환기하는 ‘기고’를 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기고라니!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답답하기가 지난해 설날 먹다 체한 가래떡이 다시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만성화된 인력 부족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수년전부터 문제가 제기돼 왔고 해결 필요성이 제기됐던 문제였다. 이번 국립목포병원은 어찌어찌 물꼬를 텄다고 해도 기고를 하겠다는 발상 대신 적절한 예산 투입을 신경 쓰겠다는 약속이 더 중요함에도 기자는 국무위원인 장관의 속내가 무엇인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지적을 하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관은) 목포도 연내 방문 계획이 있다”면서도 예산과 관련해서 “보건복지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를 거쳐야한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핵병원 두 개 중에 어딘 지원해주고 말고는 원칙의 문제와 결부된다는 것이다. 결국 두 곳 모두에 적절한 의료 및 간호 인력 확충이 목표라는 이야기다. 이 역시도 산 넘어 산이다.
내성결핵전문치료센터 설립 여부도 낙관을 하기에는 이르다. 현재 확보된 3억원은 기본 계획을 위한 외주 용역 비용일 뿐이다. 실제 센터를 지으려면 500억원은 추가로 설득해 얻어내야 한다. 이 과정이 또 만만치 않다. 내년 예산 편성을 2∼3월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시간도 빠듯하다. 이래저래 넘어야 할 산은 많고, 제출할 보고서는 산만큼 높이 쌓이게 생겼다.
◇그런데 다른 곳은…?=이로써 맥 빠진 실패기의 끝을 어떻게 낼까 고심하는 참에 최근 국립목포병원 의료진으로부터 메시지를 몇 통 받았다. 방문 일정을 한 차례 연기한 탓에 면이 서지 않은 터였다. 병원 인사는 살갑게 취재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방문해달라고 했다. 기자는 아직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관심을 더욱 쏟아야만 실패기에서 겨우 도움닫기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물며 다른 곳은 어떨까. 도서산간벽지의 의료시설은 도대체 어느 정도나 낙후됐고 망가졌고, 엉망진창일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익명을 요구한 사람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오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다리가 부러진다, 미끄러져 넘어져 허리를 다치면 그대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섬밖에 있는 큰 병원에 가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고 맙니다. 2018년에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이게 정상인가요?”
그의 일갈은 21세기 대한민국 의료의 허점이 어디에 있는 지를 말해준다. 국립목포병원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한국의 공공의료는 왜 이토록 취약한가. 그나마 있는 국립의료기관의 상태는 또 왜 그리 열악한가. 지역으로 들어가면 의료공백을 메울 대안이나 복안은 왜 그렇게 부실한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피상적인 논의는 이뤄지지만 실제 현장의 문제를 들추는 이른바 ‘의학전문기자’들은 왜 없는지도 의문이지만, 보건당국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밥값은 대단한 일이 아닐 터다. 서늘한 계절에서 맥 빠진 추적기는 쓸쓸하게 마무리된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서 있을까.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김양균 기자의 현장보고] 결핵퇴치 제자리 맴맴
입력 2018-01-14 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