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연 10억엔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

입력 2018-01-09 19:14 수정 2018-01-09 23:09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집에서 강 장관의 발표를 TV로 지켜보는 모습. 뉴시스
강경화 장관, 처리 방향 발표

돈 용처 추후 논의키로

12·28 한·일 합의는 해결책
될 수 없다는 점 확인했지만
정대협·日 모두의 반발 불러


정부는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는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기로 했다. 또한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엔(108억원)은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되 그 돈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추후 논의키로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9일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을 발표했다. 강 장관은 “12·28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며 “정부는 일본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이어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화해·치유재단 계좌에 남아 있는 60억여원은 그대로 두고, 일본 정부가 출연한 금액만큼 정부가 예비비로 편성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마련키로 한 ‘10억엔’의 의미와 용처는 아직 불분명하다.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한 10억엔 처리 문제는 피해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이다. 그러면서도 반환부터 수용까지 의견차가 크다. 정부는 현실적으로 일본에 10억엔을 반환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 예산으로 충당’이라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엔은 위안부 피해자와 국민 다수가 수용하지 못하는 사안”이라며 “일단 우리 정부 예산으로 돈을 마련해놓고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향후 마련될 10억엔을 어디에서 관리하고 어떻게 쓸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화해·치유재단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재단은 일본 정부 출연금으로 피해자에게 치유금 명목의 현금을 지급하는 사업을 벌여 왔다. 현재 60억여원이 남아 있고, 재단 운영은 중단된 상태다.

12·28 합의에 ‘불가역적·최종적 해결’이 명시된 만큼 정부가 후속 조치를 발표한 것 자체가 합의 불이행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일본 정부 예산에 의한 피해자 지원’이라는 합의 정신을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일본에 자발적이고 진정한 사과를 다시 촉구했다. 한 전직 일본 대사는 “합의를 파기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존중하지도 않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말했다. 피해자 중심주의와 한·일 관계 사이에서 어정쩡한 절충점을 찾은 결과 양측 모두의 반발만 불러왔다는 평가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일본 정부 위로금 10억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한다는 방향은 환영하지만 외교 문제라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채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만 하겠다는 태도는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일 관계는 난항이 예상된다. 정부는 역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동시에 추진하는 투 트랙 전략을 고수하고 있지만 일본이 호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