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세 최고령 예술원 회원 김병기 화백이 말하는 자코메티

입력 2018-01-09 19:08 수정 2018-01-09 21:08
김병기 화백이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민일보 창간 30주년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을 보며 자코메티의 예술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내가 자코메티와 악수를 한 사람이에요.”

100세를 넘긴 ‘장수 신화’는 또 다른 신화를 낳았다. 최고령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김병기(102) 화백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작품을 보며 감격에 겨운 듯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국민일보 창간 30주년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해서다.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스위스 조각가이자 화가 자코메티는 52년 전인 1966년 1월 65세의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만성기관지염이 심장쇠약으로 이어져 갑작스레 사망한 것이다. 자코메티는 사망 전 해인 1965년 여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졌다. 김 화백이 그를 만난 것은 수개월에 걸친 전시의 마지막 날이다.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던 김 화백은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커미셔너로 참석했다가 뉴욕에 들렀다.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을 맡아 자코메티의 작품을 심사한 인연도 있다.

“비엔날레엔 다들 큰 작품을 들고 왔지요. 1000호 정도 되는 담벼락처럼 큰 대형 작품도 있었지요. 그런데 자코메티는 10호 혹은 20호 크기의 회화 대여섯 점을 냈어요. 조각가였는데 그 작은 회화 작품들이 기억납니다.”

자코메티는 수수한 홈스펀(거친 모직물) 작업복 차림이었다. “유명해졌는데도 옷차림 따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날도 저렇게 허름했다”며 전시장 입구에 붙은 자코메티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던 김환기(1913∼1974) 화백의 부인 김향안 여사가 김 화백에게 자코메티를 소개했다. “내가 상파울루 비엔날레 심사위원이라고 전했는데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대신 관람 온 아이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게 마음에 드니 저게 마음에 드니 진지하게 설명하는 걸 보고 이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구나 싶었죠.” 이후 파리로 돌아온 자코메티는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병이 났고, 이듬해 1월 영면했다.

“자코메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피카소는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그냥 천재에 불과했다고. 천재 위에 예술가가 있는 것이죠. 그는 진정 예술가였어요.”

김 화백은 자코메티의 조각에 대해 자꾸자꾸 살집을 떼어내어 막대기처럼 된 것이 사람이며, 고독한 인간이 광장에 서 있는 그 형상이야말로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평했다.

그 당시 브라질로 갔던 김 화백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돌연 미국에 정착했다. 한국 화단에서 잊혔던 그는 1986년 국내 전시회를 하며 다시 존재를 알렸다. 2015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가진 이후 영구 귀국했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