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사외이사 역시 거수기… ‘노조 추천’ 선임 빨라지나

입력 2018-01-09 05:00

4대 금융지주 9개월새
88개 안건 중 반대 딱 한건
금융사 회장이 이사 추천
당국도 “추천 과정 불투명”

28명 중 24명 3월 임기 만료
신한·KB노조, 후보 추천나서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가 대부분 안건에 찬성을 던지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는 금융권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 움직임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8일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NH농협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분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총 88개 안건을 처리했는 데 반대가 나온 안건은 단 1건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유일한 반대는 지난해 7월 21일 하나금융 이사회에서 ‘성과연동주식 보상제도 운영기준 개정’에 대해 8명의 사외이사가 만장일치로 반대의견을 던진 것이었다. 하나금융 이사회가 처리한 16건의 안건 가운데 반대가 나온 안건은 이것이 유일했다. KB금융(25건), 신한금융(26건), NH농협금융(21건) 사외이사들은 같은 기간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 기간 사외이사들은 평균 4925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가장 많은 보수를 지급한 곳은 KB금융으로, 사외이사 1인당 평균 5600만원을 타갔다.

사외이사의 거수기 역할은 ‘회전문 인사’ 논란으로도 이어진다. 회전문 인사는 금융지주 회장이 사외이사추천위원회 등에 들어가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사외이사로 구성된 확대지배구조위원회나 지배구조 및 회장후보 추천위원회 등에서 최고경영자(CEO) 후보를 추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 같은 선임 구조가 사외이사들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대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금융당국도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문제 삼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에 경영유의 조처를 내리며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KB금융에 대해선 사외이사를 평가할 땐 현 회장을 평가자에서 제외하고 평가권한을 이사회나 이사회 내부 위원회에 부여하는 등 평가절차를 개선할 것을 주문했다. 하나금융에는 사외이사 후보군 제시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추천과정의 투명성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오는 3월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28명 가운데 24명의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주주제안을 통해 사외이사를 추천했던 KB금융 노조는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사외이사 선임안을 재차 상정할 예정이다. 신한금융 노조도 3월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기 위해 다음 달 지주와 은행에 노조의 입장을 전달할 방침이다. 하나금융 노조는 현 사외이사들에 대한 재신임 요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장과 사외이사들의 임기가 맞물린 만큼 현 사외이사들이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노조는 다음 달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노조가 우리사주조합이나 소수주주 자격으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내용 등도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지난달 민간 금융사에 ‘근로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검토하라고 권고한 것도 노조 추천 사외이사 도입을 부추기고 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조 추천 사외이사나 노동이사제가 만능 해법은 아닐지라도 노동자의 입장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 이사회에 포함된다면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