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2016년 국민 1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갈등 요인으로는 경제 양극화 문제가 꼽혔다. 국민들은 노사문제와 빈부격차 문제를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립보다 더 심각하게 인식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고용의 양극화와 노동의 질 저하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노동조건이 갈수록 악화됐다. 그러나 고용과 노동 문제에 주목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없었다. 모두가 중앙정부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여기고 있었을 때, 서울시는 노동문제를 행정의 대상으로 끌어안고 국내 최초로 ‘노동행정’을 시작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노동 정책들은 전국 지자체로 확산되고 중앙정부 정책으로 채택됨으로써 한국에 노동행정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내건 ‘노동존중특별시’라는 목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존중사회’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노동조례·노동전담부서 만드는 지자체들
서울형 노동정책인 ‘노동존중특별시’의 중요한 축은 바로 조례다. 2014년 3월 제정된 ‘근로자 권리보호 조례’에는 근로자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적정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서울시장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얼핏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노동계는 근로자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하는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원 근거를 조례로 지정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조례를 바탕으로 각종 정책이 맞물려 시스템화 되면서 안정적인 행정도 가능해졌다. 근로자 권리보호 조례는 다른 지자체로도 이어졌다. 2015년 대구시는 관련 조례를 통해 대구시장의 근로자 권리 보호 책무를 규정했다. 또 근로자 문화 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사업이나 차별방지·인권 옹호를 위한 교육, 외국인 근로자 권익보호 등 근로자 권리 보호나 복리 증진을 위해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 경비를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2016년 조례를 제정한 광주시 역시 시장이 근로자가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적정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을 마련했다. 또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5년마다 시장이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함을 명시했다. 충남도도 지난해 6월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 노동존중특별시의 또 다른 축은 노동행정체계 전담 조직이다. 서울시는 2012년 노동행정 전담 조직인 노동정책과를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신설했으며 2016년 일자리노동정책국으로 확대했다.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담 조직도 전국에 확산됐다. 경기도 역시 서울시에 이어 국 단위 일자리노동정책관을 신설했다. 광주와 충남, 성남 등도 전담 조직을 구성해 정책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노동정책과 박경환 과장은 “팀이나 과를 통한 행정 지원은 국지적 업무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데 국 단위 조직을 통해 예산과 행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시는 ‘광주형일자리’를 발표하며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등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수년전부터 추진해 온 생활임금제, 근로시간 단축, 근로자이사제 등과 닮아있다.
중앙정부도 서울시 노동정책 벤치마킹
서울시의 ‘노동존중특별시’ 정책 중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과제는 바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5년여 동안 본청과 사업소, 투자·출연기관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9098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고, 새해 직전인 12월 31일에는 서울교통공사에서 1288명 무기계약직 전원의 완전정규직화 합의를 이뤄냈다. 지난해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노동존중특별시 2단계 실행계획’을 발표하며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시의 선도적 노력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모델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이어 10월에는 2020년까지 공공부문 20만5000명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간접고용(파견·용역 등)도 정규직화 대상에 포함하는 서울시 모델을 근거로 한 것이다.
이밖에도 서울시 노동이사제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취약근로자 권익보호에 포함된 감정노동자 인권보호는 ‘감정노동자보호법 제정’ 등으로 수정·보완돼 중앙정부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노동, 행정의 키워드가 되다 <下>] 노동문제는 중앙정부 몫?… 서울시 “NO, 우리가!”
입력 2018-01-10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