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사람 살리는 나라 만들어 가자

입력 2018-01-08 17:32

사람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명제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넘쳐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와 사망 소식 때문에 의미가 결코 퇴색될 수 없다. 전쟁 또는 대형 재난으로 인한 대량 인명 손실을 일상사처럼 접하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도 고귀한 인명의 가치를 무덤덤하게 치부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존귀한 가치를 국가의 최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왜 국가가 존재하며, 왜 우리는 국가의 권위를 존중하고 국법을 준수해야 하는가. 국가가 안팎에 도사린 온갖 위험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의 안전과 자유를 지켜주고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국가나 국법질서는 그것 자체로서 존재의의가 있는 게 아니라 오로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데 필요불가결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수단이라는데 존재가치가 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의 기본정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자명한 원리가 최근 들어 때를 만난 일부 이념적인 운동단체의 편향된 목소리와 청와대, 정부 및 국가기관의 인기영합적인 놀이패가 합세하면서 여기저기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조짐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다. 한 국가의 발전 동력으로 대개 정치와 경제와 교육 그리고 종교의 몫을 손꼽는다. 그러나 이들의 권위도 신성한 제도들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무신론과 세속주의가 활개를 치는 가운데 개인주의와 다원주의, 이기주의와 쾌락주의가 우리네 정신적 삶의 터전을 점점 황무지로 만들어 간다.

실로 우리는 나라와 공동체 의식도 없고, 영원성이나 역사성에 관한 의식도 없이, 단지 오늘의 단기적인 향락에 도취돼 끝없는 공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연명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핑곗거리는 많다. 취업의 좁은 문, 불안한 미래 전망, 부도덕한 정치권력, 상대적 박탈감, 인간성을 파괴하는 극한 경쟁체제의 교육, 진리로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가는 대신 세상에 빠져 떠내려가는 종교…. 모든 것을 불만과 부정, 조롱의 대상으로 삼다 보니 각자는 위로와 안식을 찾을 보금자리도 외면한 채 홀로 나앉은 고독한 군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근 국내에 널리 알려진 미국의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다시, 국가를 생각하다’로 번역된 ‘번영의 대가’라는 책에서 한 나라의 장기적인 경제적 번영은 출산율 저하와 공공부채 증가, 근로윤리 쇠퇴와 애국심 소멸이 수반되면서 파국에 이른다고 경고했다. 또한 출산율 저하와 반려동물에 대한 선호도 증가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도 했다. 2016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가임기 여성 1명당 1.17명으로 세계 225개국 중 220위로 최하위 수준이란다.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여건이 안 돼 또는 혼자 자유롭게 사는 게 좋아서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혼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결혼 자체를 거부하는 비혼자군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인권위원회의 엄호 아래 생활동반자 결합, 동성혼의 이름으로 진정한 가정과 자녀 생육과 무관한 동거 형태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청와대와 헌법재판소와 정부가 낙태를 자유화하려는 불장난에 놀아날 소지가 있는 현실을 내다보고 있자니 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은 지도 벌써 오래됐다. 자살은 이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반사가 됐고, 고령사회에 진입하자마자 안락사를 선택하는 말기 환자들의 결정이 미덕이 될 정도다. 인명의 가치는 이미 애완동물보다 저급한 수준으로 전락돼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어느 의미에선 축복이 아니라 저주같이 느껴지는 것은 혼자만의 상념일까.

엊그제 광주북부경찰서 실종수사팀이 대구 경찰과 공조로 지난해 12월 29일 학교에서 돌아오던 길에 인터넷에서 만난 동반자살자들을 따라 대구로 가 세 번째 자살을 시도하던 어느 여고생을 극적으로 구조해 귀가시킨 기사를 읽었다. 남북 고위급회담 소식보다 신선했다. 비록 지난번 판문점을 탈출하다 치명적인 총상을 입은 북한 병사를 극적으로 살려낸 아주대 이국종 교수만큼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자살 유혹에 빠진 한 생명을 구해내기 위한 국가기관의 열정과 노력이 우리 공동체의 생명의 숲, 그 희망의 지평을 바라보게 해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이런 노력들이 오늘날 생명을 잔인하고 난폭하게 다루는 각종 권력들에 만연한 죽임의 문화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일수(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