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보이콧’ 朴, 유영하 재선임… 특활비 뇌물 혐의에 발끈?

입력 2018-01-08 05:05

변호인 사임 80여일 만에
선임계에 ‘특활비’ 변호 기재
유죄 시 도덕적 치명상 우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영하(56·사법연수원 24기)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재선임했다. 지난해 10월 16일 변호인단을 총사퇴시키고 외부 접촉을 끊은 지 80여일 만이다. 유 변호사는 국정농단 수사 초기부터 탄핵심판, 구속 뒤 옥중조사 및 형사재판 등에서 줄곧 박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 역할을 맡았다.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을 대신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사건 재판에 적극 대응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유 변호사는 지난 4일 오전 9시쯤 서울구치소를 찾아가 박 전 대통령을 접견했다. 선임계를 미리 준비해간 그는 접견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장을 찍어 구치소에 제출했다.

그 시간 검찰은 국정원 특활비 36억5000만원 수수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박 전 대통령을 추가 기소했다. 유 변호사도 이 사건 변론이 목적이라고 선임계에 기재했다. 그는 검찰이 박 전 대통령 방문조사를 추진하던 지난달에도 접견 신청을 했다가 돌연 취소했다고 한다.

유 변호사의 복귀는 국정농단 사건과 특활비 뇌물 사건 재판을 분리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가 심리 중인 국정농단 사건 재판을 석 달째 ‘보이콧’하고 있다. 재판부가 선정한 국선변호인 5명도 철저히 외면해 왔다. 재판 상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법리적 다툼보다는 ‘수사·재판의 부당성’ ‘정치적 보복’ 등을 내세워 장외전을 꾀하려 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런데 특활비 수수 사건이란 변수와 맞닥뜨리면서 이런 전략이 헝클어지게 됐다. 국정원장 3명이 뇌물로 바친 예산 36억5000만원을 박 전 대통령이 비선 진료비, 옷값, 사저 관리비 등에 쌈짓돈처럼 썼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유죄가 선고되면 “단 1원도 사적 이득을 취한 바 없다”던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이 밑동부터 흔들릴 뿐 아니라 도덕적·정치적 치명상도 피할 수 없게 된다.

국정원 특활비의 경우 박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마련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일명 ‘전두환 추징법’)의 사정권 안에 든다. 특가법 뇌물 및 국고손실 혐의는 전두환 추징법 적용 범죄로 명시돼 있다. 범죄행위로 얻은 불법수익에 대한 환수 조치가 이뤄진다면 삼성동 자택 매각 대금, 새로 구입한 내곡동 자택, 보유 중인 예금 등이 모두 대상이 될 수 있다. 한 법조인은 “검찰 조사 자체를 거부했던 박 전 대통령이 기소 당일 유 변호사를 선임한 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듣고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법정에 나갈 가능성은 현재로서 높지 않다. 건강상 이유를 들어 국정농단 재판에 불출석하는 상황에서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가 진행하는 특활비 재판만 받겠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1심 선고가 날 때까지는 특활비 재판에도 출석하지 않은 채 유 변호사를 대신 법정에 내보낼 수도 있다. 유 변호사는 8일 박 전 대통령을 다시 접견할 예정이다.

글=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