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공부 결합 ‘학교 시간표의 혁신’… 남대구초교 르포

입력 2018-01-09 05:05
여러 나라 전통의상을 입은 대구 남구 남대구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28일 교실에서 패션쇼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패션쇼는 다문화를 주제로 진행한 프로젝트 수업의 일환으로 준비됐다. 패션쇼 도중 한복을 입은 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에게 절을 올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남대구초등학교는 여러 교과를 융합해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 제작한 그림책 ‘너의 생각은 어때?’에는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왼쪽). 다양성을 주제로 진행한 프로젝트 수업 ‘모자이크’의 진도를 나타내는 게시판(오른쪽).
2학년 학생들이 펼친 카우보이 패션쇼.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주영 교사(사진 왼쪽)가 학생들과 함께 모자이크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최우수 평가
다세대 밀집지역… 공교육에 절대 의존
교사들, 10여년 前 교대와 교실 실험 시작
사회 중심 국어·과학·도덕·음악 섞어
교과서는 참고교재… 학생들이 수업 주도


‘사람들은… 남자는 멋지고 여자는 예뻐야 한다고 말해. 너의 생각은 어때?’

열한 살 초등학생 넷이 모여 만든 그림책의 첫 장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음 장에 ‘남자란? 무조건 멋지고 똑똑하고 대단해야 돼!!’라며 눈물 흘리는 남자가 그려져 있다. 이 대목은 ‘멍청하지만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는 남자도 있어.… 대단하지 않지만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도 있어’로 마무리된다.

이어 ‘여자는? 착하고 예쁘고 성격 좋아야 돼!!’라며 울고 있는 여자를 등장시킨다. ‘못생겼지만 친화력 좋은 사람도 있어 성격이 좋지 않지만 예쁜 사람도 있어.… 우리는 같이 살아가는 존재야.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고 존중하며 살아야 해.’ 그리고 책은 ‘차별당하는 사람들에게…’라며 맺는다.

책 이름은 ‘너의 생각은 어때?’이다. 대구 남구에 위치한 남대구초등학교 4학년 2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만들었다. 다양성을 주제로 진행한 융합수업 ‘모자이크’에서 이런 기특한 작품이 나왔다. 모자이크란 이름은 다른 크기나 색깔, 모양이 차별 없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이 학교는 하나의 주제를 골라 여러 교과 내용을 융합해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교과서는 참고서 중 하나일 뿐이고 교사들이 머리를 맞대 연구하고 수업을 설계한다. 교육부가 우수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초·중·고 100곳을 뽑는 ‘전국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 사업에서 올해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 최우수 등급은 6곳뿐이었다. 겨울방학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찾은 남대구초는 방학의 들뜬 분위기를 누르고 남을 만큼 흥겨운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소외된 지역 활기찬 학교

학교는 다세대주택 밀집지역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경제적 여건이 좋은 가정은 아파트가 있는 신도시 지역으로 빠져나가고 빠듯한 사람들이 주로 남은 동네였다. 학부모 대다수는 맞벌이를 하고 있다. 공교육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건의 아이들, 정부로부터 교육비를 지원받는 학생이 65%에 달한다.

이 동네의 사회경제적 지표가 추락하고 교육 여건 악화가 본격화될 무렵인 10여년 전 인근 교육대학과 남대구초 교사들이 교실 실험을 시작했다. 딱딱한 교과서 중심에서 벗어나 학생 눈높이에 맞춘 프로젝트형 수업을 도입한 것이다. 당시로선 낯선 방식이어서 우려도 컸고 시행착오도 발생했지만 꾸준히 업그레이드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

모자이크 수업 마지막 날 4학년 2반은 형형색색 색종이를 밑그림에 오려 붙이며 모자이크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주제는 사계절로 정했다. ‘계절도 다양하다’는 의미를 담았다. 교사들이 수업을 설계하며 놓친 부분을 학생들이 건의해 정한 수업 내용이다. 담임교사의 설명은 이렇다. 학생들은 다양성을 주제로 지난 5주간 여러 활동을 했다. 예를 들어 지역별 아리랑을 통해 음악 수업을, 방언의 가치를 배우며 국어 공부를 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정작 모자이크는 만들어보지 않았는데 학생들이 마지막 수업에 모자이크를 만들어보자고 했다.

2학년 교실에서는 패션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칠판에는 카우보이, 스위스, 한복, 네덜란드, 그리스라고 쓰여 있었다. 패션쇼 진행 순서를 적어놓은 것인데 카우보이 복장을 한 여섯 아이들이 나오자 소란이 일었다. 종이로 만든 허리띠를 두르고 가슴에 노란별을 붙인 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들고 한바탕 신나게 총싸움을 벌이더니 포즈를 취했다. 아버지의 가죽장갑을 낀 아이, 카우보이모자 대신 등산모를 쓴 아이도 있었다. 다문화를 주제로 진행된 프로젝트 수업 마지막 날 모습이었다. 문성순 교무기획부장은 “얼핏 보면 놀이와 공부가 구분되지 않아 배울 걸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다른 학교에 결코 뒤지지 않는 학업성취도를 보였다. 우리 학교 졸업생에 대한 중학교 선생님들의 평가도 좋다”고 강조했다.

4주는 탐구, 1주는 놀이

안영자 교장은 “한마디로 시간표의 혁신”이라고 이 학교 교육과정을 정의했다. 국어 수학 과학 수업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배우는 내용에 따라 수업 시간이 묶인다. 수업 하나가 2시간도 4시간도 이어질 수 있다. 휴식은 교사 재량에 맡겨진다. 수업 시간은 5주 코스의 프로젝트형으로 구성된다. 앞의 4주는 탐구 중심, 마지막 한 주는 책가방을 들고 오지 않고 놀이 위주로 진행한다. 프로젝트 수업은 보통 3개월 전에 설계된다.

모자이크 수업의 경우 8월에 교육프로그램이 짜여져 11월 말에 시작했다. 사회 과목을 중심으로 국어 과학 도덕 음악 등을 융합한 형태다. 4학년은 사회 시간에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자신으로 이어지는 가족 구성을 파악하고 과거와 현재의 가족 형태에 대해 공부한다. 또한 성 역할 변화를 이해하고 양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의식과 태도를 배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 및 차별 사례를 찾고 원인을 탐구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는 국가교육과정이 정해놓은 것으로 전국 학교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국어 시간에는 ‘글을 읽고 중심 생각 파악하기’ ‘낱말들을 분류해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기’ ‘다양한 매체를 보고 듣고 느낌을 나누기’ 등을 한다. 도덕 시간에는 ‘문화에 대해 종합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음악에선 ‘생활 속 우리 음악을 찾기’, 과학에선 ‘식물의 생김새와 특징 알기’ 등을 공부한다.

4주간 이어지는 교육프로그램으로 이런 내용을 소화한다. 첫 주는 학교 주변을 다니면서 식물지도와 식물도감을 만들며 과학 수업을 했다. 둘째 주는 다양성 관련 책들을 읽고 그림책을 만들었다. 저학년 교실을 찾아 자신들이 만든 그림책을 읽어주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셋째 주는 ‘남대구 화개장터’를 소주제로 방언과 표준어 토론, 지역별 아리랑 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가졌고 넷째 주는 공익광고를 제작했다. “정부에서 공익광고 제작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차이를 즐기자’라는 슬로건으로 아래 조건을 고려해 멋진 공익광고를 제작해 주세요. 주제: 문화 사회 자연 언어 등 다양성 존중에 대한 내용. 분량 1분30초에서 2분 사이. 제출사항: 광고 스토리보드 광고동영상.” 이런 식이다.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주영 교사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수업을 주도하는 걸 좋아한다”면서 “계획하고 실행하고 이뤄내는 과정에선 힘들어하지만 마무리하면 뿌듯해하며 다 같이 성취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 “남대구초는 두 번째로 부임한 학교인데 확실히 가르쳐야 할 부분을 제대로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면서 “초임 때는 교과서를 가르치는 데 급급했는데 지금은 교과서가 수많은 참고 교재 중 하나일 뿐이다. 교장 선생님이 교과서는 내던져도 된다고 하시니”라며 웃었다.

대구=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