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올림픽 컬링 개척한 경기도청 선수들
소치올림픽서 홈팀 러는 물론
숙적 日·美 꺾는 파란 일으켜
빙판위의 ‘작은 기적’ 일궈내
“첫 출전에 부담·설렘 공존
더 좋은 성적 못내 아쉬움 커”
올림픽 무대 밟았던 5명 중
현재 2명만 남아… 3명은 은퇴
이번 평창 티켓은 아쉽게 놓쳐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에 선발됐던 경기도청 선수들은 3승 6패를 거둬 10개 팀 중 8위에 올랐다. 메달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불모지로 여겨 온 한국 컬링의 사상 첫 올림픽 진출에다 첫 승리도 일궈내 컬링사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수려한 외모로도 유명세를 타며 ‘컬스데이(컬링+걸그룹 걸스데이)’라는 별명까지 얻는 등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달 29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실내빙상장. 제99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출전 준비에 여념이 없던 경기도청 선수들을 만났다. 4년 전 신미성 김지선 이슬비 김은지 엄민지 등으로 꾸려져 올림픽 무대를 밟았던 경기도청 컬링팀에는 이제 두 선수만이 남았다. 김은지(29)는 주장(스킵)이 됐고, 엄민지(27)는 팀 막내에서 벗어났다. 나머지 선수들은 은퇴한 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국 컬링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 나선 당시의 심정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김은지는 “솔직히 처음이라 잘하고 싶었고 부담과 설렘이 공존했다. 자부심보다는 세계무대에서 더 나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엄민지는 “전 소치 때 팀 막내였고, 국제대회 데뷔전이 올림픽 경기였다. 너무나 긴장해서 머리가 백지장이 돼버렸는데 실전에서 언니들이 잘했던 것 같다”며 깔깔 웃었다.
어디에서나 첫 번째 주자는 시행착오나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당시 경기도청 선수들은 국내에 컬링전용경기장이 거의 없었던 탓에 선택의 여지없이 해외 전지훈련을 해야만 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오래 떨어져 있다 보니 스트레스를 해소할 기회가 없었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느라 애를 먹었다. 소치올림픽에서는 러시아 관중이 소리를 지르는 등 컬링 관람 에티켓을 지키지 않아 방해를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홈팀인 러시아는 물론, 숙적 일본과 미국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빙판 위에 작은 기적을 썼다.
두 선수는 소치대회가 끝난 뒤 깜짝 놀랐다고 한다. 대회 전 출국 때는 국민들이 컬링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돌아오니 너무나도 뜨겁게 환영해줬다는 것이다. 김은지는 “사실 ‘컬스데이’라는 별명은 제 얼굴이 썩 예쁘지 않은데 좋게 봐주신 것 같아 부담스러우면서도 감사했다. 지금도 제 친구들이 컬스데이라고 부른다”며 수줍어했다. 엄민지는 “한·일전이 첫 경기였는데 접전 끝에 이긴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실 컬링은 세 경기만 중계할 예정이었는데 한·일전이 너무 재밌어서 전 경기를 중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다음 달 열리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경기도청이 아닌 경북체육회 선수들이 여자부 대표로 나선다. 경기도청은 지난해 4월 올림픽 대표 2차 선발전 결승에서 라이벌 경북체육회에 져 아쉽게 평창행 티켓을 놓쳤다. 충분히 속이 쓰릴 만하다. 그러나 김은지와 엄민지는 한국 컬링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경북체육회가 평창에서 좋은 성적을 내길 바란다며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먼저 경험을 해봤던 입장에서 조언하면 올림픽은 컬링뿐 아니라 종목별 전 세계 최고 실력자들이 모이는 자리다. 분위기가 일반 국제대회와 사뭇 다르다”며 “선수들이 긴장은 하되 부담은 덜고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경기도청 선수들이 경북체육회의 올림픽 선전을 바라는 이유는 또 있다. 컬링스포츠에 대한 인지도 제고와 훈련 여건 개선이다. 김은지는 “썰매나 스케이팅 종목은 큰 무대에서 성적을 내면서 많이 알려지고 지원도 늘었다. 컬링도 메달권에 진입해야 발전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엄민지는 “국내 컬링장이 부족한데 반해 팀은 많아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한정적으로 훈련하는 상황”이라며 “코치와 선수들이 정빙(얼음정비)까지 도맡는 열악한 환경도 개선됐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두 선수는 올림픽을 계기로 컬링이 대중화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컬링 선진국인 캐나다를 예로 들었다. 캐나다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컬링을 즐긴다. 아무리 작아도 동네마다 컬링장이 하나쯤은 있다. 캐나다 전역에 2200군데가 넘는다고 한다. 남녀, 믹스더블 대표팀이 모두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캐나다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태릉빙상장과 이천컬링훈련원, 강릉 의정부 의성 등에 위치한 컬링센터 정도를 제외하면 마땅한 훈련 시설이 없다. 일반인은 컬링을 접해볼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엄민지는 “사실 컬링이 어떤 종목인지도 모르고 취미로 시작했다. 처음엔 ‘투포환 같은 건가?’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생소했다”며 “평창올림픽을 통해 컬링이 국민들에게 더욱 사랑받는 스포츠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김은지는 “저는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생활을 하다 고등학교 진학 후 뒤늦게 컬링으로 전향했다”며 “요즘은 어릴 때부터 컬링을 배우는 선수들이 생겼다. 올림픽을 통해 컬링에 관심 갖는 유망주가 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올림픽은 어떤 의미일까. 김은지는 “올림픽은 제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난 4년간 평창을 향해 뛰었는데 대표로 선발되지 못해 상실감이 컸다. 그래서 더 소치올림픽이 아른거리지만 다시 분발하겠다”고 다짐했다. 엄민지는 동생이라 그런지 “전 세계 스포츠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즐기는 축제다”고 쿨하게 말했다. 그러다가 진지한 김은지의 얼굴을 쳐다본 엄민지는 약간 멋쩍어했다. 하지만 두 선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서로를 향해 웃음보를 터뜨렸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겨울 영웅에 듣는다] 경기도청 컬링 선수들 “컬스데이 별명 감사… 평창 계기 컬링 대중화 기대”
입력 2018-01-08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