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첫 美 쇼트트랙 대표 데이비스
빙속으로 전향, 올림픽서만 메달 4개
평창서 ‘소치 노메달’ 명예회복 별러
통가 올림픽 태권도 대표 타우파토푸아
처음 본 눈에 반해 크로스컨트리 도전
크로스컨트리로 시작한 러 출신 랍신
바이애슬론으로 바꾼 뒤 한국에 귀화
운동을 업으로 삼은 선수들이 종목을 바꾸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다. 하지만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거나 출전하기 위해 도전장을 내민 모험가들이 적지 않다. 경쟁이 치열한 종목에 있다가 생존을 위해 전향한 경우가 많지만 하계 종목에서 뛰다가 전혀 스타일이 다른 동계 종목으로 갈아탄 선수들도 있다. 일부는 종목 전환 이후 정상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성과가 없어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얼굴들도 있다. 메달을 따든 못 따든 이들이 펼치는 변화와 도전의 파노라마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드라마가 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의 스피드스케이팅 스타 샤니 데이비스(35)는 쇼트트랙에서 전향한 뒤 성공 신화를 썼다. 2006 토리노·2010 밴쿠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금메달, 1500m 은메달 등으로 총 4개의 메달을 수확했다. 4년 전 소치올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던 데이비스는 지난 4일(한국시간) 미국 대표 선발전에서 2위를 차지해 평창행을 확정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당시 데이비스는 쇼트트랙 선수였다. 흑인 선수 사상 최초로 쇼트트랙 대표에 선발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대표 선발 과정에서 불거진 승부조작설에 연루돼 올림픽행이 무산됐다. 결국 그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새 도전에 나섰고, 전 세계가 인정하는 일인자로 우뚝 섰다. 평창대회는 30대 중반에 접어든 그의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 무대다. 그는 “올림픽에 다시 설 생각을 하니 너무 떨린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평창올림픽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한 선수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나라 동계스포츠의 대표적 금밭인 쇼트트랙은 하계올림픽의 양궁처럼 국제대회보다 국내 경쟁이 더 치열하기 때문이다. 장거리 스타 이승훈은 2009년 4월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김보름도 2010년까지 쇼트트랙 선수였지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꾼 뒤 여자 장거리 간판 스타가 됐다. 2014 소치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2관왕에 올랐던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한국 빙속 사상 최초로 올림픽 두 종목에 나서게 됐다.
남자 바이애슬론의 러시아 출신 귀화선수 티모페이 랍신은 18세까지 크로스컨트리 선수였다. 그는 스키를 타다 우연히 사격을 접했는데 소질을 보이면서 재미를 붙였다. 결국 2008년 크로스컨트리와 사격이 결합된 바이애슬론으로 전향했다. 랍신은 종목 전향 이후 러시아대표로도 활약하는 등 두각을 보였으나 지난해 지도자간 파벌싸움의 희생양이 됐다. 평창행이 불투명해진 그는 한국으로 귀화해 올림픽 도전 기회를 잡았다.
아예 하계스포츠에 몸을 담았다가 변신한 독특한 케이스도 있다.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통가에서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나선 태권도 선수 피타 니콜라스 타우파토푸아(35)는 현재 스키 선수로 평창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남자 태권도 80㎏ 이상급 16강전에서 이란의 사자드 마르다니에게 패했지만 고국에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대우받았다. 특히 대회 개막식에 웃통을 벗고 구릿빛 근육을 뽐내며 통가 기수로 나선 모습은 세계적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 타우파토푸아는 리우올림픽이 끝난 뒤 태권도가 아닌 스키로 전 세계인의 앞에 서기로 결심했다. 타우파토푸아는 “2015년 난생 처음으로 눈을 구경했는데 그 매력에 빠져서 스키 선수로 올림픽에 도전하게 됐다”고 종목을 바꾼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부터 꾸준히 국제스키연맹(FIS) 주관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나서며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필요한 점수를 쌓고 있다. 워낙 늦게 스키 선수가 되는 바람에 평창행이 불투명하긴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도전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200m 동메달리스트인 여호수아는 현재 봅슬레이로 전향해 4인승 대표팀 상비군 소속으로 훈련 중이다. 그는 2015년 두 차례 무릎 수술을 받아 힘든 시간을 보내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의 제의를 받아 하계에서 동계종목으로 전향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평창 ‘꿈의 무대’ 위해… 종목 갈아탄 선수들
입력 2018-01-06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