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 박경근
성장기 외국서 오래 생활한 덕분에
한국 문화를 ‘타자 시선’으로 풀어
획일적인 군대 집단문화 영상화해
삼성 리움 ‘아트스펙트럼작가상’ 수상
이번에는 소총을 이용한 설치 작품
24일 심사위원들 즉석 투표로 선정
새롭게 천착하는 주제는 ‘가족’
“로또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에요. (저처럼) 운 좋은 사람에게는 못 당해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난 박경근(40) 작가는 이렇게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미술계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다. 2016년 삼성미술관 리움이 젊은 작가에게 주는 제2회 아트스펙트럼작가상을 수상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뽑는 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올랐다. 서울관에선 네 후보의 개인전처럼 꾸며진 전시 경연이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오는 24일 심사위원들이 현장에서 즉석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한다.
올해의 작가상은 미술계에선 ‘장원급제’로 통한다. 역대 수상자들이 국제무대에서 단박에 스타로 부상함에 따라 최종 승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수상자가 되지 못해도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박 작가는 써니 킴(49) 백현진(46) 송상희(48) 등 후보 가운데 가장 어리다. 스스로도 로또에 비유한 초고속 부상이다.
올해를 빛낼 문화계 스타로 미술계가 박 작가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왜 운이라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전 한국에 연줄도 없고 ‘빽’(배경)도 없어요. 그런데 이렇게 자꾸 뽑히니 어떻게 달리 설명을 하겠어요”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한국에선 학연이 되게 세잖아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뭔가 잘 안 맞아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몰려다니더라고요. 어느 날 알았어요. 다 그 학교 출신이었어? 뭐 이런 거 있잖아요. 하하”라고 소리 내어 웃었다.
박 작가는 한국 사회에 갑자기 날아든 이방인이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2006년 28세에 입대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미국 UCLA에서 디자인과 미디어아트를 전공했고, 칼아츠(CalArts·캘리포니아예술전문대학원)에서 영화와 비디오 분야 석사를 마쳤다.
과연 운일까. 성장기를 외국에서 보낸 것이 운으로 연결될 수는 있겠다. 덕분에 한국 문화에 젖지 않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타자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대부분 한국 남자들이 괴롭지만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군대 집단문화를 그는 낯설게 바라봤고, 그게 작품 소재가 됐고, 그것으로 상을 받은 것이니.
대학원 졸업 후 상업미술을 하던 그는 군대를 다녀온 후 갑자기 순수미술로 방향을 틀었다. 획일적인 군대 집단문화를 영상으로 풀어낸 ‘군대: 60만의 초상’으로 아트스펙트럼작가상을 수상했다.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작품이다.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내놓은 작품도 군대문화가 소재다. 이번엔 영상이 아니라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엔 긴 소총이 8열로 줄지어 있다.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조용하던 전시장에선 갑자기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일제히 누웠던 총이 일어선다. 군인들이 일사불란하게 “받들어 총!” “세워 총!” 하는 모습 같다.
일단 메시지가 쉬워 대중들이 좋아한다. 그러면서 시적이고 함축적이다. 층고가 아주 높은 전시공간의 양쪽 벽면을 스크린 삼아 소총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비치는데, 마치 전체주의자의 환영을 보는 듯하다. TV 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도 그의 작품이 전파를 탔다. 올해의 작가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물었다. 그는 “사주를 봤는데 별 굴곡 없이 쭉 간다는데요”라며 에둘러 표현했다.
아트스펙트럼작가상 수상 이후 이름이 알려지며 바쁘게 지낸다. 그는 “며칠 전 중국 상하이를 다녀왔다”며 “빠르면 연내 상하이 유리미술관에서 유리를 매체로 빛과 영상이 들어가는 커미션(제작비 지원) 작품 전시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중과의 접점을 높이기 위해 장편 영상 작업도 진행 중이다. 13분짜리 ‘군대: 60만의 초상’을 1시간40분짜리 장편영화로 제작해 베니스나 칸 등 국제영화제에 출품한다는 계획이다.
그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천착하는 주제는 가족이다. 자신의 삶인데도 가족으로서의 의무감, 가족이라는 틀, 혹은 효의 윤리에 갇혀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한국적 현실에 대한 자신의 경험도 녹아있다. “어느 날 악몽을 꿨어요. 내가 동생의 팔을 먹고 있고, 동생이 엄마 발을 먹고 있고, 엄마는 아버지 머리를 먹고 있는…. 네 맞아요. 이중섭 가족 그림의 좀비 버전이지요(웃음).”
결혼에 대한 압박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씩 웃는다. 2남 중 장남이니 한국 사회에선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동생 호근씨는 CF감독으로 일하며 형의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2018 빛낼 문화계 스타] 박경근 “연줄도 배경도 없는데… 로또 당첨된 거나 같아”
입력 2018-01-08 05:05 수정 2018-01-08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