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 성덕선(혜리)이 88서울올림픽 피켓걸로 발탁되자 아버지는 “우리 딸 출세했다”며 기뻐했다. 브라운관 TV로 개회식에 나온 덕선을 본 쌍문동 이웃들도 환호했다. 국가적 행사에 내 자식, 내 친구가 참가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 자랑스러워했다.
30년 만에 다시 한반도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폐회식 공연에 참여하는 중·고교생과 대학생들도 “세계적인 행사에서 우리나라를 빛낸다는 자부심과 명예로 참가하게 됐다”고 했다.
평창올림픽조직위는 이들을 언제든 쉽게 동원할 수 있는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한 듯하다. 수백명의 학생들이 3개월을 연습하고 공연비로 10만∼20만원을 받기로 했다(국민일보 2017년 12월 22일자 10면 참조)는 보도가 나갈 때까지도 조직위는 뭐가 문제인지 알지 못했다.
학교와 교수·교사 뒤에 숨어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 다시 오기 힘든 기회다’라는 낡은 명분으로 수많은 덕선이들을 불러냈다. 조직위는 “출연자들이 자원봉사 개념으로 양해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기자가 만난 덕선이들은 “자원봉사라면 봉사활동 시간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동원을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기사가 나가자 “본인이 동의한 것 아니냐. 왜 이제야 난리냐”는 반론도 있었다. 고교생이던 덕선이 중년이 될 만큼 긴 세월이 지났지만 국민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다고 여기는 인식은 변하지 않은 듯 느껴졌다.
논란이 갈수록 커지자 조직위는 뒤늦게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시급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자리에서도 정작 피해자인 학생들에게 사과를 하거나 유감을 표명하지는 않았다.
조직위가 공연예술의 가치를 몰랐던 것은 아닌 듯하다. 전문 댄서로 분류된 이들에게는 많게는 275만원까지 수고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 학생들에게 강요한 열정페이와 비교하자 조직위는 “전문 댄서는 해당 업무에 필요한 훈련을 통해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조직위가 고용한 전문 댄서들 중에도 고교생과 대학생이 있었다. 열정페이를 강요당했던 학생들 역시 여러 해 동안 무용을 전공한 이들이었다.
손재호 사회부 기자 sayho@kmib.co.kr
[현장기자-손재호] 평창올림픽조직위 아직도 ‘열정페이’
입력 2018-01-05 18:57 수정 2018-01-05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