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國 외교갈등으로 번진 ‘伊 유학생 고문치사 사건’

입력 2018-01-05 05:05
이탈리아 청년 줄리오 레제니
레제니의 지도교수였던 마하 압델라만 박사
伊 출신 케임브리지 대학원생
이집트서 납치된 뒤 고문·피살
“강도살해” “이집트 당국 소행”
이집트-伊 갈등 빚다 英에 불똥


이집트에서 벌어진 영국 대학 소속 이탈리아 학생의 고문치사 사건이 2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은 채 관련된 세 나라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와 이집트 사이가 얼어붙었다가 지난해부터 화살이 영국으로 향하면서 이탈리아와 영국 사이에 이상기류가 생겼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에 있던 28세 이탈리아 청년 줄리오 레제니는 2016년 1월 25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실종됐다가 9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시신에는 심하게 고문당한 흔적이 가득했다.

이집트 노동운동에 대해 연구하러 카이로를 찾았던 레제니는 이집트 현 정권과 반목하는 인사들을 만나고 다닌 탓에 현지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는 이집트 보안 당국의 고문으로 레제니가 사망한 것으로 의심했다.

그러나 이집트 정부는 외국인의 돈을 노린 범죄조직이 레제니를 납치, 살해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범인 4명을 사살했다며 정부의 배후설을 일축했다. 이탈리아 당국의 수사에도 협조하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이집트의 주장을 믿지 않았고 양국 관계는 급격히 나빠졌다.

그러다 지난해 8월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이집트가 사건 자료를 이탈리아에 넘겼고 이탈리아는 본국으로 소환했던 주이집트 대사를 16개월 만에 귀임시켰다.

이후 이탈리아 수사 당국은 케임브리지대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학교가 레제니를 위험한 연구로 내몬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의혹의 핵심은 레제니의 지도교수였던 이집트 출신 마하 압델라만 박사다. 이탈리아 언론은 “압델라만 교수가 이집트의 불법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을 도운 일로 레제니가 현지 경찰의 의심을 샀다”거나 “압델라만이 카이로에서 너무 정치적인(반정부적인) 인물을 소개해줘 레제니가 곤란해졌다”는 의혹을 쏟아냈다.

하지만 케임브리지대와 압델라만은 조사를 한동안 거부했다. 지난달 영국과 이탈리아 외무장관이 만나고 영국 법원이 수사를 승인하고 나서야 압델라만이 조사를 승낙했다. 그는 이달 중 영국에서 이탈리아 수사관을 만날 예정이라고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영국에선 이탈리아가 난민 문제와 교역 등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에 이집트를 건너뛰고 영국으로 수사 방향을 튼 것으로 보고 있다. 존 찰크래프트 런던정경대 교수는 “이탈리아 정부가 이집트와의 비즈니스 재개를 선언한 지난해 9월 영국 대학에 대한 조사 요구가 동시에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