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올림픽 金 기적 재현 노려
당시엔 대학생 아마들로 팀 구성
4강서 최강 소련 꺾고 결국 우승
이번에도 NHL 선수없이 평창행
신·구 조화로 38년 만에 정상 꿈
토니 그라나토(54) 미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은 16세 때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의 침실에 있던 TV로 미국과 소련의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아이스하키 준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미국이 2-3으로 뒤져 있던 3피리어드. 미국의 마크 존슨이 소련 골키퍼 다리 사이로 슛을 날려 3-3 동점을 만들었다. 1분 30초 뒤엔 미국 주장 마이크 에루지오니의 중거리슈팅이 터졌다. 최강 소련을 꺾겠다는 일념으로 뭉친 미국은 4대 3 역전 드라마를 썼다. ABC의 스포츠 캐스터였던 알 마이클즈는 경기 종료 직전 소리를 질렀다.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이제 5초 남았습니다. 여러분, 기적을 믿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미국은 결승전에서 핀란드까지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미국의 아마추어 대학 선수들이 소련 선수들을 꺾은 이 사건은 ‘미라클’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열혈팬이 된 그라나토는 아이스하키 프로 선수가 됐다. 그는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출전했으며,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에서 13시즌 동안 뛰었다. 현역 은퇴 후엔 NHL팀인 콜로라도 애벌런치를 이끌기도 했다. 위스콘신대 아이스하키팀을 이끌던 그는 지난해 7월 미국 대표팀 감독에 선임됐고, 이제 이런 소리를 듣고 있다. “여러분, 토니 그라나토를 믿습니까?”
레이크플래시드올림픽에 출전했던 대표팀과 평창올림픽에 나서는 대표팀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NHL 소속 선수들이 없다는 것이다. 레이크플래시드올림픽 땐 NHL 소속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이 금지됐다. NHL은 평창올림픽을 보이콧했다.
1960년(미국 스쿼밸리 동계올림픽)과 1980년에 이어 미국은 평창올림픽에서 역대 3번째 금메달에 도전한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던 미국이 ‘드림팀’을 꾸리지 않고도 평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
미국의 평창올림픽 대진 운은 나쁘지 않다. 3개조 총 12개국이 참가하는 남자 아이스하키는 8강에 오르면 토너먼트를 치러 메달 주인공을 가린다. 세계 랭킹 5위인 미국은 러시아(2위), 슬로바키아(11위), 슬로베니아(15위)와 함께 B조에 속했다. 그라나토 감독은 지난 2일(한국시간) 골리 2명을 제외한 23명의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대표팀은 베테랑 선수들과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그리고 대학생 선수들로 구성됐다. 이들 중 NHL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는 모두 15명이다. 그라나토 감독은 경험과 패기, 신구조화로 평창올림픽에서 파란을 일으킨다는 각오다.
대표팀에서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선수는 주장을 맡은 백전노장 공격수 브라이언 지온타(38)가 유일하다. 그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해 6경기에서 4골을 터뜨린 바 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NHL 버펄로 세이버스와의 계약이 끝난 그는 NHL에서 16시즌 동안 1006경기에 나서 289골, 299도움을 기록했다.
그라나토 감독은 최근 웨스트팜비치 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은 영화 ‘미라클’을 봤고, 존슨과 에루지오니의 활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며 “모두 금메달을 따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한 가지 묘책을 고안했다. 80년 올림픽에서 극적 골을 넣은 마크 존슨 현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에게 당시 기적의 주인공들이 평창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을 위한 동영상을 만들어주도록 요청한 것이다. 그라나토 감독은 전설들의 격려를 받은 선수들이 평창에서 다시 한 번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어게인 1980!… ‘2군’ 美아이스하키 ‘평창 미라클’ 도전
입력 2018-01-05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