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초월한 교감과 위로…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 리뷰

입력 2018-01-04 18:58 수정 2018-01-04 20:40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의 한 장면. 고집불통 앙리할아버지(오른쪽)의 집에 상큼 발랄 대학생 콘스탄스가 세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수현재컴퍼니 제공

“삶이란 성공하거나 실패하는 게 아니란다. 중요한 건 사랑하는 데 얼마나 성공했느냐다.” 최근 개막한 프랑스 원작의 국내 초연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는 이 한마디 대사를 던지기 위해 러닝 타임을 줄곧 달려온 듯 보였다. 앙리할아버지(이순재 신구)는 호기심 넘치는 대학생 콘스탄스(박소담 김슬기)에게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런 내용의 편지를 남긴다. 여기서 사랑은 연인과의 사랑만이 아닌 모든 관계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작품은 아버지의 잔소리에 시달리다 꿈을 품고 상경한 콘스탄스가 낯선 앙리의 집에 세 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까칠한 앙리는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지내다 아들 폴(이도엽 조달환)과 폴의 아내 발레리(김은희 강지원)와 갈등을 빚는다. 콘스탄스는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면서 한편으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다. 앙리는 노년층이 겪는 소외와 가정불화, 콘스탄스는 젊은층이 안고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상징한다.

피아노는 둘 사이를 연결하는 매개체다. 피아노 사용금지는 앙리가 콘스탄스에게 내건 까다로운 입주 조건 중 하나. 하지만 어느 날 술에 취한 콘스탄스가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둘이 지닌 상처와 아픔이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정서 교감이 이뤄진다. 앙리의 사별한 아내가 좋아하던 것이 피아노이고, 콘스탄스가 아버지의 반대로 좋아함에도 포기하려던 것도 피아노라는 사실이 드러나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형적인 치유 성격의 연극이다. 하지만 프랑스 작품다운 개방적인 소재와 독특한 전개 방식에 특유의 웃음 코드가 섞였다. 국내 정서와는 좀 다르다고 느낄 수 있다. 관객에 따라서는 전개가 억지스럽거나 내용이 낯설고 불편하다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앙리가 아들 부부 사이를 서로 떼어놓기 위해 콘스탄스에게 황당한 제안을 하는 부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극에 얼마큼 몰입할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준비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앙리가 콘스탄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세대를 초월한 교류에서 나오는 울림. 앙리는 피아노에 재능이 있지만 현실에 부딪혀 접으려는 콘스탄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거다. 학교에 합격하고 인정받는 것보다 중요한 건 좋아하는 걸 지켜나가고 누군가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런 응원은 이 시대 청춘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닐까. 2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명문화공장. 4만∼6만원.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