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영웅에 듣는다] 김기훈 “날 들이밀기 대역전, 끝까지 포기 안해 얻은 승리”

입력 2018-01-05 05:02
우리나라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기훈 울산과학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울산 동구 울산과학대 아산체육관 아이스링크장에서 스케이트날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김 교수는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5000m에서 ‘날 들이밀기’로 대역전극을 만들어냈다.
김기훈 교수가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당시 코너를 주행하고 있는 모습. 김 교수가 현역 시절 코너에서 스피드를 이어가기 위해 고안한 ‘외다리주법’은 쇼트트랙의 정석이 됐다. 대한체육회 제공
김기훈 교수가 아들 태형(8)이와 함께 지난달 26일 울산과학대 아산체육관 아이스링크에서 나란히 서서 ‘날 들이밀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태형이가 “스케이트 타는 게 재밌다. 아빠처럼 올림픽 금메달을 따 유명해지고도 싶다”고 말하자 김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기훈 교수가 지난달 26일 울산과학대 아산체육관 아이스링크에서 수강 중인 학생들의 출석을 부르고 있다. 김 교수는 선수 생활 은퇴 후 학업을 이어나갔고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구촌 겨울 최고 축제 평창 동계올림픽이 35일 앞으로 다가왔다. 메달에 도전하는 젊은 태극전사들의 선전에 온 국민이 감동을 느낄 시간이 펼쳐진다. 이들을 남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바로 동계스포츠 선배들이다.

첫 금메달을 따거나 혹은 열악한 환경에서 겨울 종목을 개척한 영웅들의 격려와 경험은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되게 마련이다. 국민일보는 올림픽 개막 전까지 ‘겨울 영웅에게 듣는다’ 시리즈를 통해 선수들에게 응원메시지를 남길 예정이다.


<1> 한국 동계올림픽 최초 金메달리스트 김기훈

국내 올림픽이라는 부담 덜어내고
상대 분석 철저히 하면 목표 달성 가능

선수가 최고로 생각하는 건 올림픽 金
남자 임효준 스피드·황대헌은 힘 좋아
여자는 최민정·심석희가 잘 끌어줄 것


김기훈(51) 울산과학대학교 스포츠지도과 교수는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막판 ‘날 들이밀기’로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한국 동계스포츠 사상 두 번째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그의 스케이트날 끝에서 만들어진 우승에 대표팀 선수 모두가 기뻐하며 태극기를 들고 빙판을 돌았다. ‘날 들이밀기’는 이후 한국 빙상 선수들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잡게 된다. 앞서 김 교수는 1000m에서 한국 동계스포츠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알베르빌에서 2관왕에 오른 그는 2년 후인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도 1000m 금메달을 차지, 동계올림픽 첫 2연패라는 족적도 남겼다.

지난달 26일 울산 동구 울산과학대학교 아산체육관에서 동계스포츠의 영웅인 김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 후배들에게 “국내 올림픽이라는 부담을 덜고 상대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5000m 계주에서 대역전극을 만든 ‘날 들이밀기’는 어떻게 나온 건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순간적 기지였다. 이후 우리나라 선수들이 ‘날 들이밀기’로 선전하면서 중요성을 전 세계 선수가 알게 됐다. 이젠 모두가 쓰는 기술이 됐다. 쇼트트랙에서 제가 했던 기술 등이 하나의 법칙으로 자리 잡는 것을 보면서 많이 노력하고 연구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다.”

-1980∼90년대 당시 동계스포츠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는가.

“쇼트트랙이 시범종목이었던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1500m·계주 50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어 1989 솔리헐 세계선수권대회 1000m에서 금메달을 또 차지하면서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빙상계는 물론 나도 기대치가 높아졌다. 캐나다 선수들이 우세했지만 88년에 이긴 경험이 있어 자신감이 붙었다. 다만 쇼트트랙은 찰나의 순간 변수가 생길 수 있으니 확신은 못했다.”

-최초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쇼트트랙의 영웅으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가.

“이제 정말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마무리를 잘해야 하는데 특히 부상이 없어야 된다. 막판 부상은 선수로서 경기 출전 자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지금 시기에 새로운 기술, 새로운 뭔가에 도전하는 것은 맞지 않다. 국내에서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이라 더욱 부담이 클 건데 거기에 신경 쓰지 말고 경기에만 집중하길 주문하고 싶다. 또 상대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필요하다. 나만 해도 현역 시절 국가별, 선수별 특성을 파악해 거기에 맞춰 경기를 준비했다. 안현수(빅토르 안)만 봐도 한국 대표팀 시절 상대 코치가 어떤 지시를 내리는지도 꼼꼼히 체크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특히 주목하는 후배 선수들이 있는가.

“남자 쇼트트랙의 임효준은 스피드가 정말 눈에 띈다. 황대헌은 힘이 좋아 밀리지 않을 거 같다. 여자의 경우 최민정·심석희가 쌍두마차로 잘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동계올림픽 무대란 쇼트트랙 선수에게 어떠한 의미인가

“선수들이 최고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게 올림픽 메달이다. 올림픽에 출전할 때마다 역사를 쓴다고 생각했다.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 때는 처음이어서 그야말로 겁 없이 도전했다. 4년 후 알베르빌올림픽에서는 쇼트트랙이 첫 정식종목이 된 만큼 메달을 꼭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때는 올림픽 2연패를 노렸다. 올림픽 2연패는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 부담감이 컸지만 믿음을 가지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1000m 금메달을 딴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은 예정보다 2년 빨리 열리면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나설 수 있어 내게 행운이 되기도 했다.”

-1992 알베르빌·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금메달로 ‘우리나라도 동계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국민적 희망을 줬다. 당시 분위기가 어땠는가.

“당시 금메달을 딴 직후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주인이 서비스 음식을 주거나 돈을 받지 않았을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 차를 타고 가다가 잠시 정차하면 옆 차에서 날 알아보기도 했다.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다가 가끔 광진구 자양동에 있는 집을 가면 소녀팬들이 팬레터와 선물 등을 들고와 집앞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당시엔 정말 기분이 좋았고 감사했다. 한편으로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부담도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런가.

“시범종목 때까지 합해 3번 나가서 금메달을 땄다. 특히 ‘쇼트트랙은 운칠기삼이다’라는 얘기를 당시에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운동하는 입장에서는 듣기에 그리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금메달을 위해 흘린 땀이나 들인 노력 등이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시범종목 금메달을 딴 것이 ‘운칠기삼’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알베르빌올림픽을 앞두고는 더 훈련을 열심히 했다. 알베르빌올림픽 이후 같은 해 미국 덴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전 종목을 석권(5관왕)했다. ‘덴버의 연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만큼 노력을 많이 했고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오히려 자극제가 더 됐던 것 같다.”

-이제는 ‘빅토르 안’인 안현수를 대표팀에서 지도해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알려져 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안현수의 선전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안현수의 기량은 정말 뛰어났다. 하나를 가르치면 정말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안현수만 특별히 더 가르친 건 아니다. 대표팀에서 모든 선수를 똑같이 지도했는데 안현수가 더 자주 나를 찾아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다독여줬다. ”

-지금도 쇼트트랙 기술 연구에 집중하신다고 들었는데 포부가 있는가.

“지금의 선수들은 내가 한창 탈 때와는 기술이나 트렌드가 다른 것 같다. 현역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고 내가 탈 때의 노하우와 섞어 새로운 기술을 생각하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 태형(8)이가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탄 지 3개월 밖에 안 됐지만 울산시교육감배 빙상대회에 나가 4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험해온 쇼트트랙 기술이나 노하우, 앞으로 고민할 것들을 아들에게 가르쳐 보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다.”

▒ 김기훈 교수는

한국 동계스포츠의 산 증인이다. 한국선수로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시범 및 정식종목에서 첫 금메달을 따는 등 쇼트트랙의 역사를 쓴 인물이다. 그가 현역 시절 고안한 ‘외다리주법’(코너에서 원심력을 극복하고 스피드를 이어가기 위해 한발로 스케이트를 타는 기술)과 ‘호리병주법’(직선 주로에서 인코스로 달리다가 다시 바깥쪽으로 빠지면서 상대를 앞서나가는 기술)은 혁신을 넘어 이제는 정석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친 후 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고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67년 서울 △경기고 △단국대 경영학 학사, 체육학 석사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이학박사 △1992 알베르빌·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금메달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대표팀 감독 △2007∼현재 울산과학대학교 스포츠지도과 교수

울산=글·사진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