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비정규직 직접 고용에… 하청업체 “밥그릇 빼앗겨”

입력 2018-01-04 05:05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1층 출입구에 청사 위탁용역 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축하하는 행정안전부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시스
기존 계약 조기 해지 위해
‘인센티브’까지 주며 압박
하청업체들 강력 반발


국토교통부가 산하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공공기관의 하청을 받아온 중소·중견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공공기관들이 기존에 하청을 주던 업무를 자회사 설립을 통해 직접 운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청 기업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 개선이라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 대신 공공기관들이 중소·중견기업의 밥그릇을 빼앗아 몸집만 키우고 있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하청 기업과의 계약 해지를 서두르기 위해 잔류계약이 남은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인천공항 하청 업체 관계자는 3일 “인천공항은 우리 회사에겐 가장 중요한 원청 기업인데 자꾸 계약 해지를 하라고 한다. 앞길이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공항공사의 경우 1만명 중 3000명만 본사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나머지 7000명은 별도 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기로 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도 지난 10월 안전과 생명에 직결되는 업무를 진행하는 인원 1300여명에 대해 자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공기관들이 자회사를 통한 직접고용 실행을 위해 무리한 작업에 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공항공사는 60여개 용역 업체 중 1004명의 직원이 있는 11개 용역 업체와는 계약을 해지하거나 변경했다. 이 중 4개는 계약 기간 만료로 자동 해지됐지만 나머지 7개 중 3개 업체는 조건부 계약 해지했다. 공사는 조기 계약 해지 기업들에겐 잔여 계약 기간 중 이윤의 30%를 지급하기로 했다. 인천공항공사 측은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해서 업체들 쪽에 사정을 얘기하고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조기 계약 해지를 하는 업체들의 보상은 판례가 없어 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대형 법무법인에 요청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청 업체들은 비상대책협의회를 만들어 인천공항공사 결정에 반발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인천공항공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다. 인센티브를 받고 계약을 해지한 기업들은 나머지 기업들과의 갈등을 우려해 공사 측에 명단 비공개를 요청한 상태다. 코레일도 조기 계약 해지를 추진하려고 했지만 업체들의 반대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작업이 공공기관의 몸집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인천공항공사와 코레일이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자회사 설립 방식을 선택하면서 나머지 공공기관들도 따라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이 파견·용역을 맡기는 직종은 청소나 건물관리 등 단순 기능직인 경우가 많아 자회사를 통한 직접 고용 가능성이 높다.

자회사 직접 고용 방식은 본사보다 열악한 복지와 동종 유사 업무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 등을 볼 때 간접고용과 다를 바 없다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실제로 2006년 코레일이 만든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은 비정규직 승무원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했지만 직원들은 현재까지도 열악한 처우에 노출돼 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