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분란만 일으킨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입력 2018-01-03 17:18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개헌의 방향과 틀을 제시하기는커녕 분란만 일으킨 것은 유감이다. 법률적 구속력이 없는 자문안이고, 그마저 초안에 불과하지만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민감한 사안을 명문화한 것은 무책임하다. 갈등을 촉발하고 불필요한 이념 논쟁만 불러올 뿐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문위 초안에 포함된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 조항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헌법에 명시된 국민개병주의 원칙에 따라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수정하려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친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나라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 현실적 방법을 담은 대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일부에서 외치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국가의 존재 이유와 시민의 의무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특정 이단종교의 병역회피 특혜 주장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자문위 초안에는 성평등 조항 신설, 사형제 폐지처럼 우리 사회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거나 찬반논란이 거세게 충돌하는 이슈마저 일방적으로 담겨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자문위 초안이 나온 과정을 생각하면 이런 무책임한 결과가 나온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자문위는 처음부터 방향을 잡지 못한 채 난상토론과 이념논쟁으로 시간을 보냈다. 보수·진보 인사들의 서로 다른 생각을 조화시켜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의도는 순진한 발상에 불과했다. 결국 각각의 주장을 병렬적으로 나열함으로써 아무 의미가 없는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다. 내용이 알려진 뒤 자문위가 개헌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개헌 논의는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절실한 필요 때문에 시작됐다. 대통령이 바뀌면 전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은 뒤 구속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데 대부분 국민이 공감했던 것이다. 그런데 개헌 논의가 진행되면서 설익은 주장만이 판을 치고 있다. 개헌을 주도해야 할 국회에서조차 정파적 이익을 앞세운 싸움만 계속되고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통치원리를 담은 규범이다. 소수의 생각을 강요하는 도구가 결코 아니다. 국회의 개헌 작업은 대부분 국민이 이미 공감한 내용을 추려 제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