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엔 파격적 대화, 美엔 초강경 위협… 김정은의 두 목소리

입력 2018-01-02 05:05
김정은 파격 대남 메시지 배경

文 대통령 대북 제안 화답 형식
왕래·교류협력 증진 등 구체적
긴장 고조 책임은 우리측에 전가
한·미 관계 균열 내려는 속셈도
‘핵 유지 남북관계 개선’ 재확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내놓은 대남 메시지는 파격적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직접 밝혔을 뿐 아니라 남북 접촉과 왕래, 교류협력 증진 등 제안 내용도 과거보다 구체적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갈수록 강화되고 북·미 직접 대화 가능성도 희박해지자 올해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대남 평화 공세를 취하고 미국을 배제시켜 한·미동맹 이완을 유도하는 ‘통남봉미(通南封美)’ 노림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 “북과 남 사이 접촉과 내왕(왕래), 협력과 교류를 폭넓게 실현해 서로의 오해와 불신을 풀고 통일의 주체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진정으로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원한다면 남조선의 집권여당은 물론 야당들, 각계각층 단체들과 개별적 인사들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대화와 접촉 내왕의 길을 열어 놓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의 대남 메시지는 전반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제안에 화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이후 민간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과 교류 협력 확대,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당국 회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등을 촉구해왔다. 이산가족 상봉이 언급되지 않은 점을 제외하면 김 위원장의 발언은 긍정적인 응답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북한 최고지도자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이 직접 언급된 것은 이례적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자신감과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은 한반도 긴장 고조의 책임을 우리 측에 돌렸다. 자신들은 남북관계 개선 용의가 있었는데 우리 측이 한·미연합군사훈련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에 참여하는 등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는 북과 남이 예정된 행사를 성과적으로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남북관계와 한·미동맹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등 한·미 관계에 균열을 내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핵장비와 침략 무력을 끌어들이는 일체의 행위들을 걷어치워야 한다”고 말했다. 핵을 그대로 가진 채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뜻도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의 대남 제안은 남북관계 주도권을 자신들이 갖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의 반대급부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미군 전략자산 순환배치 중단, 대북제재 해제, 대규모 경제협력 재개 등 ‘계산서’를 내밀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강력한 대북 제재의 예봉을 무디게 하고 한·미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전후에는 도발을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명분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이용한 인공위성 발사를 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의 다른 축인 경제개발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부는 “대북 제재에 대응해 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바탕으로 인민 생활의 향상과 개선을 강조했다”고 평가했다. 비사회주의 현상과 세도, 관료주의 척결을 명분으로 내걸고 주민 통제와 엘리트 숙청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핵무기 실전 배치 암시
김정은 지도체제 안정성
대내외에 과시 포석 분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미국을 겨냥해선 높은 수위의 ‘핵타격’ 위협을 계속했다. 남측을 향한 평화 및 대화 공세와는 상반된 행보다.

김 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타격 사정권 안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위협했다.

김 위원장이 핵무기 발사장치인 ‘핵 단추’를 대외적으로 언급하며 핵무기 실전 배치를 암시한 것은 처음이다. 강력한 대북 제재나 군사적 옵션 등을 계속 거론하는 미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한다”며 “우리 국가의 핵무력은 미국의 그 어떤 핵 위협도 분쇄하고 대응할 수 있다. 미국이 모험적인 불장난을 할 수 없게 제압하는 강력한 억제력”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지난해 6차 핵실험과 15차례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를 통해 미국 전력에 맞대응할 수 있는 전력을 확보했다는 주장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우리 당과 국가와 인민이 쟁취한 특출한 성과는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공화국은 마침내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을 보유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29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형’을 발사한 후 선언했던 ‘국가핵무력 완성’을 재차 언급한 것이다. ICBM에 핵탄두를 탑재, 발사할 수 있는 전력을 갖췄다는 취지다.

특히 김 위원장은 탄도미사일 대량 생산 계획을 소개하며 미국을 겨냥한 위협 수위를 한껏 높였다. 그는 “핵무기 연구 부문과 로켓 공업 부문에서는 이미 그 위력과 신뢰성이 확고히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 생산해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들의 핵전쟁 책동에 대처한 즉시적인 핵반격 작전 태세를 항상 유지하도록 해야겠다”고 위협했다.

김 위원장 신년사를 보면 북한은 올해 화성 15형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 12형’ 등의 대량 생산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탄도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및 종말 유도기술 등을 완성하기 위한 추가 도발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북한이 핵탄두를 500∼600㎏으로 소형화하는 기술을 완성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핵무기 기술을 1년 내 완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탄두 소형화, 종말 유도 기술은 상당 부분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며 “전력화와 실전배치를 위한 마지막 단계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 등을 완성하기 위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올해에도 지속적으로 고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 당국은 확고한 군사대비태세 유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현재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없다”면서도 “북한이 대화 공세를 통한 국면 전환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북방한계선(NLL)이나 전방 지역에서 전술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북한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