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 900점이 말해주는 신라인의 삶… ‘신라 왕궁, 월성’ 특별전 르포

입력 2018-01-01 18:42 수정 2018-01-01 21:26
지난 28일 찾은 경북 경주 인왕동의 신라 왕성인 월성 유적지. 3년에 걸친 발굴 조사를 완료한 이곳에선 도슨트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발굴 성과는 인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왕궁, 월성’ 특별전을 통해 볼 수 있다.
전시 중인 터번을 쓴 토우.
동물 다리 모양 받침의 벼루.
각종 동물 뼈.
지난 28일 경북 경주 인왕동 387-1번지. 월성(月城)이라 이름 붙여진 신라 천년 왕궁 발굴 유적지를 찾았다. 남산을 향해 새우처럼 등을 구부린 긴 토성은 멀리서 보면 초승달 모양 그대로였다. 신라 때 이곳 월성 일대는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신라인들은 깨진 기와를 재활용해 실 뽑는 방적구로 쓸 만큼 지혜가 있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터번 쓴 이란계 외국인들이 거리를 활보해 신라인들이 키득대기도 했을 것이다.

이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4년 12월부터 3년에 걸쳐 월성 내부를 발굴 조사한 결과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인근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유병하)에서는 발굴 성과를 전시로 엮은 ‘신라 왕궁, 월성’ 특별전이 마련돼 이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월성 유적을 통해 신라인의 일상과 문화를 들여다보도록 꾸며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었다.

월성은 삼국사기에 101년에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라는 천년 역사 동안 한 번도 수도를 옮기지 않았으니 통일신라가 멸망한 935년까지 궁성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전시에서 금관 같은 왕실 유물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금관, 금귀고리 등 화려한 유물은 무덤 부장품으로 나오는 것이라 이번 전시엔 없다.

그러나 월성의 건물지,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연못인 해자 등에서 나온 각종 토기와 기와, 토우(흙으로 만든 인형), 목간(문자를 적은 얇은 나무 조각), 동물 뼈, 씨앗 등 900여점의 유물을 통해 베일에 가려졌던 신라인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월성 발굴에서 화제가 됐던 성인 인골 2구의 발견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토목공사를 하면서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인주(人柱)설화’가 허구가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사례였다.

가장 흥미로운 건 터번을 쓴 토우다. 해자에서 출토됐다. 윗옷 소매가 좁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이슬람문화권의 카프탄을 입고 있는 이 인물은 소그드인(중앙아시아의 이란계)으로 추정된다. 전시를 기획한 최성애 학예사는 “조사 결과 6세기 것으로 추정돼 신라가 최소 6세기 이전부터 서역과 교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수입된 원숭이 얼굴 모양 호루라기도 대외 교역을 증언하는 유물이다.

신라엔 재활용 문화도 있었다. 못 쓰게 된 기와를 재가공한 가락바퀴(가운데 구멍이 뚫린 원시적인 방적구)도 무수히 나온 것이다. 부의 상징인 기와집이 아주 많았다는 것도 보여주는 유물이다.

씨앗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해자에서는 가시연꽃 씨앗이 가장 많이 나왔다. 가시연꽃은 가시가 돋친 잎이 지름 1m가 넘는 식물이라 방어용으로 심었을 것이다. 복숭아 씨앗은 두 번째로 많았는데, 월성 주변엔 복사꽃이 많이 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외 머루 씨앗은 먹거리 문화를 보여준다. 개 사슴 강치 멧돼지 소 말 등 각종 동물의 뼈도 많이 출토됐다. 특히 소뼈에는 불로 지진 흔적이 있어 의례용으로 바쳐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자 생활이 정착된 신라인의 삶을 짐작케 하는 유물도 볼 수 있다. 해자에서는 제작연대가 분명한 목간 7점이 출토됐다. 출토된 목간에는 ‘병오년(丙午年)’이라는 정확한 연대가 적혀 법흥왕 13년(526년) 혹은 진평왕 8년(586년)으로 볼 수 있다. 문자를 찍은 기와, 글자를 새긴 토기 조각은 물론, 동물 모양의 다리를 한 고급 벼루도 대거 출토돼 신라인의 문자생활을 전해준다. 2월 25일까지.

경주=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