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김정은의 ‘평창 참가’ 언급 차분하게 대응하라

입력 2018-01-01 17:32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대표단 파견 의사를 피력했다. 남북 당국 간 접촉 가능성도 열어놨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림픽 기간 한·미 합동 군사훈련 연기 검토를 공식적으로 밝힌 지 열흘 만에 나온 메시지여서 주목을 끈다. 올림픽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임을 고려할 때 남북 실무 접촉이 곧 있을 것으로 보인다. 꽉 막혀 있던 대화의 문이 모처럼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로 평가된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대남 정책을 통해 정면 돌파해보려는 김 위원장의 의도가 엿보인다.

올림픽 참가를 시사하는 이 메시지가 핵 포기로 가는 전략적 전환으론 보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미국 본토 전역이 핵 타격 사정권에 있다면서 “핵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말했다. 핵무기 실전 배치를 시사한 대목이다. 언제든 미국을 향해 핵탄두 탑재 ICBM을 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압박에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러기에 제재 국면을 모면하기 위한 전술적 전환으로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이 새해에도 내부적으로 핵무기 장거리 운반 능력을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외부 정세 변동에 따라 이 능력을 시험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과거에도 평화를 얘기하면서 내부적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화전 양면전술을 자주 사용해 온 북한이 아니던가.

북한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추가 도발 중단을 먼저 선언하는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김 위원장의 메시지에 담겨 있는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중지라는 조건도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 남북 접촉 과정에서 한·미동맹 균열과 남한 내 갈등 유발을 시도하려 든다면 더욱 강력한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특히 평창올림픽을 전후해 추가 도발에 나설 경우엔 김정은 정권의 안전은 더 이상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유념하기 바란다.

정부는 긴 호흡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대화 제의로 남북 관계 개선이 마치 코앞에 다가온 양 호들갑을 떨어선 안 된다. 단기적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대화의 세부 조건과 속도 등을 세밀하게 조절해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한 대표단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급선무인 만큼 여기에 집중하는 게 작지만 현실적이다. 우발적인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올림픽 기간 핫라인 개설에만 합의해도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 등 섣부른 욕심을 부려 대북 제재의 끈을 먼저 놓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한·미 간 긴밀한 사전 조율은 필수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위기가 될 수 있는 국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