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황재호] 올해 한·중관계 나쁘지 않다

입력 2018-01-01 18:03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2월 중국 국빈방문을 놓고 여전히 말이 많다. 중국 관영 CCTV 진행자의 무례한 대통령 인터뷰, 중국 경호원의 한국기자 폭행, 대통령의 ‘혼밥’은 최악의 외교참사 비판까지 야기했다. 하지만 아무리 국익을 위해선 울다가도 바로 웃어야 한다지만 양국이 죽자 살자 싸웠던 사드를 ‘봉합’한 것이 불과 한 달 여전이었다. 절대권력 시진핑 국가주석이었기 때문에 전격 결정을 내릴 수 있었지만, 바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문 대통령과 환하게 웃기엔 중국도 부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가능한 화려하지 않게, 내실 중심의 방중이 양국으로서는 최선이었다. 때문에 이번 방중이 형식상 홀대인지 환대인지보다는, 내용상 우리 안보이익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가 그 평가기준이 돼야 한다.

중국이 사드 협의와 국빈방문까지 수용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중국을 둘러싼 대만, 동중국해, 남중국해, 인도와의 접경지역이 대체로 안정적인데, 유독 북핵과 사드 문제로 한반도만 안보적 부담으로 남아 있었다. 이번 사드 협의로 껄끄러웠던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면 북핵문제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특히 북핵 관련 미국의 공세는 중국으로서도 큰 압박이다. 대통령의 방중 즈음 북핵 처리 관련 미·중 협의가 있었다는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은 시기상 큰 관심을 끌었다. 작전 후 즉각 38선 이남 복귀라는 미국의 약속에 동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중국의 딜레마는 미국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을 개시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다. 어쩌면 중국은 미국의 이런 점증하는 무력 사용 분위기를 읽고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서둘렀는지 모른다. 지금 사드보다 더 급한 것이 북한 상황인 것이다.

만약 북한발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여러 구상과 노력이 논의됐고, 향후 미국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이번 정상회담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의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한·미의 군사훈련 동시 잠정 중단)을 선제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미 모두 북한의 불법적 핵미사일 개발과 합법적 한·미 군사훈련 간 비등가성 원칙 견지의 목소리가 크다. 하지만 국내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 있다. 쌍중단을 ‘동시 중단’으로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잠시 중단’이다. 즉 조건부 중지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평화적 개최를 위해 그 기간 동안만 잠시 중단하는 것이다. 쌍중단을 위해서는 미국의 신뢰와 지지 획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방중 동안 중국과 나눴던 얘기를 똑같은 표정, 톤, 억양으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잘 전했어야 한다. 또 쌍중단은 미국에도 1석3조임을 설득해야 한다. 즉 북한이 우리의 호의를 받지 않고 도발을 계속하면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심화될 것이다. 이미 동참한 유엔의 대북 제재안 외에 중국은 추가 경제압박이나 상징성 있는 정치 제재를 가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적 올림픽을 위한 미국의 양보는 미국의 국제사회 리더십을 긍정하게 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17일 송타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 방북할 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큰 움직임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보자”고 트위터에 올렸었다. 잘되면 미국과의 협력 때문이고 못돼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전형적인 숟가락 얹기였다. 상관없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성공적 평창올림픽 개최의 모든 공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만 미국이 묵인할 가능성이 커진다. 때문에 대통령의 방중 평가는 적어도 평창올림픽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미·북이 문제를 풀기 어려운 상황에 한·중이 같이 풀어낸다면 방중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머리를 맞대고 푸는 과정에서 양 정상 간 신뢰가 생긴다면 중요한 성과다. 평창올림픽을 잘 넘기면 환대론까지는 아니라도 홀대론은 사그러들 것이다. 사드 협의를 넘어 평창 공조는 경제와 한류 등 여타 분야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8년 연말에 올 한해 한·중관계는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받을 것이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