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 젊은 시절 연인 ‘모델’ 이사벨, 피카소 등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 불어넣어

입력 2018-01-01 20:23
한때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연인이었던 이사벨 니콜라스. 이사벨은 당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했다. 코바나컨텐츠 제공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의 특징 중 하나는 전시장의 동선이다. 전시장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모델’이 돼준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분돼 있다. 관람객들은 가장 먼저 자코메티의 유년기 작품들을 마주한 뒤 코너를 돌면 이 여인을 모델로 삼은 조각상이나 그림들을 만나게 된다. 바로 자코메티의 젊은 시절 연인이었던 영국 여성 이사벨 니콜라스(1912∼1992)다.

이사벨은 20세기 미술사에 해박한 독자라면 이미 알고 있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자코메티뿐만 아니라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와 앙드레 드랭(1880∼1954), 조각가 제이콥 엡스타인(1880∼1959)의 모델로 활동하며 이들에게 예술적인 영감을 주었다.

대단한 미인이어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를 흠모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사벨의 눈빛은 강렬했고 성격은 쾌활했다. 그가 영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건너온 건 1934년 9월이었다. 자코메티는 이때쯤부터 이사벨을 알았지만 멀리서 그의 모습을 관찰하기만 했다. 자코메티에게 이사벨은 도무지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의 여성이었다. 그는 이사벨의 아름다움에 서서히 끌렸고,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3개월간 동거를 하기도 했다.

자코메티와 이사벨의 관계가 결딴나버린 건 1945년 크리스마스였다. 둘은 지인이 마련한 파티에 참석했다. 그런데 이사벨이 한 잘생긴 청년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리면서 사달이 났다. 남자는 르네 라이보비츠라는 이름을 가진 음악가였다.

이사벨은 며칠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자코메티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에는 자신이 사라진 건 라이보비츠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라는 요령부득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코메티의 삶을 다룬 책 ‘자코메티-영혼을 빚어낸 손길’(을유문화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자코메티는) 그녀에 대한 애정을 1945년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영원히 끝냈다. 나중에 그는 이사벨을 ‘남자들을 삼키는 사람’이라고 말해 자신의 명석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인생과 예술에 많은 기여를 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