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증오 접고 내일과 희망 열어가야
2018년 무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우리는 늘 마음을 새롭게 다진다. 그 까닭은 새해는 내일을 향하고, 희망을 말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그랬고 그 지난해에도 그랬다. 새해에 다짐했던 내일과 희망이 지나고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일과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우리의 현실이 어떤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게 된다. 그마저 없다면 역사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다. 새해의 생각과 다짐이 대한민국 공동체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시민 개개인에게 중요한 이유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추동력을 확보하는데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 나와 너의 책임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새해의 생각과 다짐에는 반드시 지나온 일에 대한 성찰과 냉정한 현실 인식이 필요하다. 성찰을 통하지 않고 말하는 내일과 희망은 생명력이 없고 공허하다. 막연한 기대일 뿐이다. 막연한 기대는 사행심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지난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탄핵을 결정하기까지나 이후 대통령 선거 등 수습하는 과정은 세계 언론이 높이 평가할 정도로 질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우리 공동체가 아직은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합리적 수준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은’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점차 바닥 모를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편 가르기, 양극화 심화, 흙수저와 금수저, 세대 갈등과 대책 없는 초고령사회, 인구절벽…. 가진 자들은 가진 자들대로, 소외된 자들은 소외된 자들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상대방을 향한 증오와 냉소가 가득하다. 개선될 조짐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바닥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교수신문은 2017년 사자성어로 사악한 것을 깨고 올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 이 말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옳지 못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많았다는 것을 전제한다. 지난 정권에서 역사와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을 생생히 목도했다. 대통령과 정치의 리더십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도 뼈저리게 느꼈다. 세월호 사태와 탄핵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안에 봉건적 사고방식·행태의 잔재,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부실덩어리, 권력에 대한 맹종 같은 것들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파사’에는 모두가 동의하나 ‘현정’의 방법과 방향을 놓고 의견 대립이 있다. 적폐청산이냐 정치보복이냐는 구호는 그런 상황을 집약한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편싸움이 심해질까 두려울 정도다.
해결은 정치 리더십 회복에 있다. 내 편 네 편 가르기로, 지역주의 정치로 국내는 멍들고 국제무대에서는 불신당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현정의 방법과 방향이 이를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또 다른 부숴야 할 것으로 인식된다면 엄청난 국가적 불행이다. 여권은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대책 없는 반대로 일관하며 증오를 부추기는 야권의 책임도 크다. 이렇게 정치권이 리더십 부재로 가다간 구한말의 처량한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개헌 찬반 토론이나 6월 지방선거는 정치권이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여야가 올해의 두 가지 큰 현안에 대해 진영 싸움이 아니라 좀 더 국가 대전략을 고려하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며 진중하게 접근하기 바란다.
천민자본주의·봉건의식 잔재 떨쳐내길
한반도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하다. 각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이 작성한 이코노미스트의 ‘2018 세계경제대전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북한과 중국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100년간 미·중 관계, 미국과 한·일의 동맹관계가 달라질 수 있고, 북한 붕괴 시 중국 주도 하에 한반도 통일 가능성까지 언급한다. 그만큼 동북아 정세의 변동성은 크다. 정치 지도자들은 국제사회 속 한국의 위상과 생존 방법을 좀 더 냉혹하게 평가해봐야 한다. 정파 싸움은 국경에서 멈춰야 한다는 외교 경구를 깊이 새겨야 한다. 올해 세계 경제는 전반적으로 회복 추세라고 예상됐다. 급격한 기술 변화로 4차 산업혁명 사회가 성큼 다가설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이 흐름을 잘 타야 한다. 그런데 국내는 반기업 정서와 배타적인 민주노총 중심의 노조 영향력 확대로 불신의 골만 깊어간다. 중남미 국가들처럼 될까 걱정된다. 최저임금제,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정부의 지혜로운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
모든 게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어떻게 만든 나라인데 주저앉을 수는 없다. 이젠 갈등과 분노, 증오를 걷어내고 내일과 희망을 말해야 한다. 역사의 진전은 시민 개개인의 자각에서 출발한다. 국정농단을 가능케 했던 사회 구조나 우리 인식의 문제는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권력과 돈으로만 향하는 우리 안의 천민자본주의는 없는가. 내 편 아니면 불의라는 이분법적 시각은 왜 그리 확대되는가. 이런 성찰 뒤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내일의 세상과 희망을 말해야 한다. 그것은 막연한 이상이나 편협한 강고함에서 벗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올해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 이른다. 몇 천 달러 시대의 사고와 인식으론 이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치와 정부는 물론이고 3만 달러 시대에 걸맞은 시민의식도 갖춰져야 한다. 지난해 ‘이게 나라냐’는 구호가 터져 나왔지만 올해는 ‘이게 삶이다’는 평가가 나오도록 정치나 정부, 시민 각자가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훗날 이 시대에 있었던 탄핵이나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건 사고가 지나고 보니 ‘위장된 축복(Blessing in disguise)’이었다고 규정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위기다. 우리는 해방과 전쟁, 가난과 치열한 국제 경쟁을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다.
정치·정부·시민의 리더십 회복 절실하다
2018년, 국민일보가 태어난 지 30년을 맞는다. 올해의 표어를 ‘세상을 이은 30년, 희망을 여는 30년’으로 정했다. 내일과 희망을 말하기 위함이다. 지금 갈등과 분노, 불만이 팽배하지만 이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민일보가 앞서서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한 그 역할과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위기 극복의 시발점이 되는 올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설]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 만들어 가자
입력 2017-12-31 17:20 수정 2017-12-31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