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선적 배, 여수서 실은 정유 北선박에 넘겼다

입력 2017-12-29 18:18 수정 2017-12-29 20:58
지난 10월 19일 북한 금별무역 소속 선박 예성강1호(각 사진 화살표 표시된 배)가 외국 선박과 물건을 옮겨 싣는(환적) 장면을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21일 공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에 따르면 북한 선박과의 환적은 금지돼 있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을 비롯한 제3국과의 환적을 통해 제재를 피해가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미 재무부 제공
대만 그룹이 임대해 사용 중인 선박
올 10월 일본산 정유 600t 옮겨 실어
정부, 여수 재입항 때 나포해 압류

넘겨주고 받은 선박 2척 모두
美가 제재대상 추가지정 요청한 배

여수항에서 일본산 정유제품을 싣고 출항한 홍콩 선적 ‘라이트하우스윈모어’호가 지난 10월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정유 600t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2397호)에 따라 여수항에 재입항한 라이트하우스윈모어호를 나포해 압류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29일 “라이트하우스윈모어호가 10월 19일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 ‘삼정2호’에 정유제품을 선박 간 이전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며 “해당 선박이 11월 24일 여수항해 다시 입항해 관세청에서 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관세청 조사 결과 라이트하우스윈모어호는 10월 11일 여수항에 들어와 일본산 정유제품 1만4039t을 적재한 뒤 대만을 목적지로 내세워 출항 허가를 받고 15일 오전 떠났다. 여수항은 ‘오일 허브’로 중국 러시아 일본 홍콩 대만 등 각국 유류제품의 중간 집하장 역할을 하고 있다. 선박은 대만에 있는 빌리언스벙커그룹이 임대해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배에는 중국인 선원 23명, 미얀마인 선원 2명이 타고 있었다.

선박은 빌리언스벙커그룹 측 지시에 따라 목적지인 대만으로 가지 않고 동중국해 공해상으로 가 선박 4척에 정유제품을 이전했다. 이 중 1척이 북한 선박인 ‘삼정2호’로 드러났다.

라이트하우스윈모어호와 삼정2호는 최근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 제재대상 추가 지정을 요청한 선박 10척에 포함돼 있다. 삼정2호 등 4척은 제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만, 라이트하우스윈모어호 등 6척에 대해선 중국이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정2호가 북한으로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관세청 관계자는 “선박의 위성추적장치를 끄면 어느 항구로 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10월 말쯤 한·미 공조를 통해 관련 정보를 인지하고 라이트하우스윈모어호의 움직임을 주시하다 이 배가 여수항에 재입항하자 붙잡아 조사했다. 현재 선박과 선원들은 여수항에 억류돼 있다. 안보리 결의 2397호는 회원국 항구에 입항한 금지행위 연루 의심 선박을 나포, 검색, 동결하도록 의무화했다. 정부가 북한에 정유제품을 이전한 선박을 적발한 건 처음이다. 안보리 제재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감시 체계가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