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길 U-23 감독 “최악 골짜기 세대의 반란 이끌 것”

입력 2017-12-30 05:05
김봉길 U-23 대표팀 감독이 지난 2일 창원축구센터에서 작전판을 이용해 선수들에게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인천 사령탑 땐 ‘봉길 매직’ 연출
주목받지 못한 선수들로 팀 구성
내년 U-23 챔피언십서 우승 노려


그는 2012 시즌 약체인 시민구단 인천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19경기 연속 무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13 시즌엔 인천을 상위 스플릿에 올려놓았다. 팬들은 ‘봉길 매직’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는 인천을 클래식에 잔류시킨 직후인 2014년 12월 팀을 떠나야 했다.

전화 한 통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김봉길(51) 감독은 “허망할 뿐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코치 시절부터 7년 동안 헌신했던 인천이었다. 그는 인천 사령탑에서 물러난 후 석 달 동안 축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방황은 길지 않았다. 그는 한국고등연맹선발팀을 지휘하며 다시 축구 현장으로 돌아갔다. 지난 3월엔 초당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지난 9월 26일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놀라운 제안을 받았다. U-23 대표팀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김 감독은 유공 코끼리(제주 유나이티드 전신)와 전남 드래곤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현역 은퇴 후 부평고와 백암종고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이후 전남 코치, 인천 코치를 거쳐 인천 감독으로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축구협회는 그가 학원과 프로 팀 지도 경험을 고루 갖췄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 선수들과의 친화력도 높이 평가했다.

김 감독은 현재 제주도 서귀포 시민운동장에서 U-23 대표팀의 전지훈련을 지휘하고 있다. U-23 대표팀은 내년 1월 9일 중국 쿤샨에서 개막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과 내년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출전한다.

김 감독은 두 대회의 목표를 우승으로 잡았다. 만만찮은 도전이다. 기존의 강호들이 건재한 가운데 최근 동남아시아 축구가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고(故) 이광종 감독이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기에 김 감독이 느끼는 부담감은 클 수밖에 없다. “당시 한국과 북한의 결승전(한국 1대 0 승)을 현장에서 지켜봤어요. 내년에 그런 감동의 순간을 재현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번 U-23 대표팀은 보기 힘든 ‘골짜기 세대’다. 두 살 터울 형들은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나섰고, 두 살 아래 동생들은 지난 5월 U-20 월드컵에 나섰다. 하지만 이번 U-23 대표팀은 세계 대회를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골짜기 세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리 선수들에겐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뜻으로 뭉친다면 놀라운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쳤다.

김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선수들과의 소통이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 많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감독과 선수들이 생각을 공유해야 팀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 U-23 챔피언십은 김 감독의 첫 시험대다. 조별리그부터 상대가 만만찮다. 한국은 강호 호주와 약진하는 베트남, 투혼으로 뭉친 시리아와 함께 D조에 편성됐다. ‘김봉길호’는 30일 건국대, 내년 1월 3일 수원대(오전) 및 광운대(오후)와 연습경기를 치른 뒤 6일 중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김 감독에게 U-23 대표팀에서도 ‘봉길 매직’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어 봤다. 그는 “나는 마법사가 아니다. 선수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일 뿐이다”며 허허 웃더니 “잡초처럼 주목받지 못했던 우리 선수들이 독기를 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하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