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여론에… 文 대통령 서둘러 입장 표명

입력 2017-12-29 05:05
시민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회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촉구하며 시위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피해자·국민 배제된 정치적 합의”… 강한 어조 비판

당초 신년 메시지 통한
관련 사안 언급 예상됐으나
직접 입장문 발표 결정

‘역사와 별개 외교 관계 회복’
투트랙 입장 거듭 밝혔지만
한·일 관계 경색 불가피할 듯


문재인(얼굴)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2년 전인 2015년 12·28 합의는 다시 무효로 돌아갈 공산이 커졌다. 청와대는 ‘재협상’이나 ‘합의 파기’는 아니라고 했지만, 문 대통령의 언급 수위로 볼 때 사실상 재협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8일 오전 10시30분쯤 별도 입장문을 통해 위안부 합의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프다”며 “또한 현실로 확인된 비공개 합의의 존재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이라며 “진실을 외면한 자리에서 길을 낼 수는 없다”고도 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이뤄진 합의에 대한 강한 비판이 담겨 있다.

문 대통령의 입장문은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의 조사 결과 발표 하루 만에 나왔다. 문 대통령이 직접 입장 발표를 지시했다고 한다. 당초 아침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의 현안점검회의 때만 해도 대통령 입장 발표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하지만 오전 9시쯤 대통령 일일현안보고 때 분위기가 바뀌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초 신년 메시지 등을 통해 관련 사안을 언급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대통령이 서둘러 입장 발표를 하라고 결정하신 것”이라며 “입장문도 임 실장과 상의해 직접 작성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직접 별도 입장을 발표한 것은 전날 TF 보고서 발표 이후 위안부 합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진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신속한 현안 대응을 강조하는 문 대통령의 지론도 반영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합의 파기’를 거론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적·불가역적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만큼 앞으로 정해진 수순은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청와대 관계자는 “후속 조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합의 파기 및 재협상 여부는 현재 답할 수 없다”며 “합의 파기 및 재협상 여부까지 포함한 후속 조치를 1월 중으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한·일 양국이 불행했던 과거의 역사를 딛고 진정한 마음의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런 자세로 일본과의 외교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역사 문제와 별도로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투 트랙’ 전략도 소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일 관계에 대한 입장은 투 트랙이며, 대통령 입장문도 그런 원론적 차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벌써부터 ‘합의 파기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문제와 별개로 양국 협력이 제대로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