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간 행사 참석 위해
업무 없는 날도 출근 ‘악습’
며칠 후 시무식과 겹치기도
최근엔 생략하거나 간소화
휴가자 배려해 조기 시행도
참석 강요 관행도 줄어들어
서울의 한 지점에서 근무하는 은행원 김모(29)씨는 올해 마지막 날을 회사 사람들과 함께 보낸다. 31일은 일요일이지만 지점장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를 가지려 한다’며 직원들 모두 오후 7시까지 지점 근처 식당으로 모이라는 공지를 내려 보냈다. 이곳 지점의 종무식을 이날 하는 셈이다. 김씨는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연휴인 주말을 이런 식으로 날리는 게 억울하다”고 28일 토로했다.
이처럼 직장인을 괴롭히는 종무식 문화는 이제 흔치 않다. 구태로 치부되던 옛 종무식 문화는 사라지고 있다. 1∼2시간 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업무가 없는 날에 출근하거나 휴가를 미루던 악습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며칠 뒤 이어지는 시무식과 내용이 겹치는 데다 ‘허례허식’에 불과하단 지적이 잇따르자 종무식을 생략하거나 간소화하는 트렌드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 계열의 전자 회사에 다니는 주모(26·여)씨도 이런 변화의 덕을 봤다. 그는 “올해 종무식을 하지 않은 덕분에 이번 주는 휴가를 내 쉬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선 이달 초 ‘종무식은 조직별로 자율적으로 진행하라’는 공지를 띄웠다. 주씨가 속한 본부는 종무식을 아예 생략하기로 했고 다른 곳도 대부분 일찍 하거나 간소하게 진행키로 했다. 같은 회사 다른 센터에서 근무하는 이모(25·여)씨는 “연말에 휴가 가는 사람들을 배려해 종무식을 일찍 했다”며 “지난주 오전에 회의실에 모여 간단한 업무보고를 하는 걸로 대신했다”고 설명했다.
종무식 참석을 강요하던 관행도 사라지는 추세다. 서울시내 공기업에서 3년째 근무하고 있는 임모(26)씨는 올해 종무식이 있는 날에 연차를 냈다. 29일 오전 회사 강당에서 사장의 훈화를 듣고 사가를 부르는 간단한 행사가 있지만 임씨는 이날 출근하지 않는다. 그는 “종무식 날에 휴가를 낸다고 해도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선배들 중에도 지금 휴가 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직장인들은 이런 변화를 반긴다. 은행에 다니는 김모(30)씨는 “종무식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라며 “상사에게 잔소리나 듣는 형식적 종무식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고 털어놨다. 회사원 이모(31)씨는 “종무식의 연장선상에서 시작된 회식 자리가 새벽까지 이어지곤 한다. 어차피 시무식도 곧 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글=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직장인 괴롭히는 허례허식… 종무식이 사라진다
입력 2017-12-29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