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 뒷談] 공정위 직원 단속에 “윗물만 맑아도…”

입력 2017-12-29 05:05

“연말 안부전화 했습니다.” “고맙습니다만, 다시는 전화 안 주셨으면 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펼쳐지는 연말 풍경이다. 공정위는 사건 처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외부인 접촉 관리규정’을 제정해 내년부터 시행한다고 28일 밝혔다. 이 규정에 따르면 공정위 직원은 관련 업무를 하는 법무법인 변호사나 대기업 직원, 공정위 퇴직자와 접촉했을 때 5일 이내에 반드시 서면 보고를 해야 한다. 부적절한 로비나 청탁이 없어도 접촉한 사실 자체만으로도 보고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대면 접촉뿐 아니라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 비대면 접촉도 포함된다. 정부기관 가운데 외부인 접촉 관련 규정을 도입·운영하는 곳은 공정위가 처음이다.

만약 접촉한 외부인이 조사정보 입수 시도, 사건 관련 부정한 청탁, 사건업무 방해 행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행위를 한 게 확인되면 이 외부인은 1년간 공정위 공무원과 접촉할 수 없다. 보고 의무나 접촉 제한 의무를 위반한 공무원 역시 징계 대상이 된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내놓은 이 조치를 놓고 공정위 내부에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미 공정위 내규에 ‘외부인의 부적절한 접촉에 대한 금지 및 징계’ 규정이 있기 때문에 ‘옥상옥(屋上屋)’이라고 지적한다.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에서 보듯 부적절한 로비는 ‘윗선’에서 다 하는데 애꿎은 일선 직원만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한다는 반발도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관예우도 국장급 이상 ‘윗선’이 만든 것이고, 그들과 거래한 것도 고위직이었다”면서 “고위직들이 이미 있는 규정만 잘 지켰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