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 없던 ‘개성공단 폐쇄’ 朴 지시 이틀만에 공식 발표

입력 2017-12-28 19:21 수정 2017-12-28 19:27
28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개성공단 일대. 지난해 2월 박근혜정부의 전면폐쇄 결정 이후 지금까지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뉴시스
2016년 2월 靑 무슨 일이

北 광명성 4호 발사 당일
NSC 열었지만 검토 안해
이튿날 돌변해 ‘일사천리’

재가동은 안보리 위반 논란
통일부 “검토할 상황 아니다”

개성공단 폐쇄 결정이 내려진 지난해 2월 한반도 정세는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었다. 그해 1월 6일 북한은 4차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2월 7일에는 장거리미사일 ‘광명성 4호’를 쏘아 올렸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3년 만의 대형 도발을 맞아 초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하지만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가 28일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4차 핵실험은 물론 광명성 4호 발사 직후도 개성공단 폐쇄는 검토 대상이 아니었다. 광명성 4호 발사 직후 열린 박근혜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공단 폐쇄 결정은 없었다.

분위기가 급변한 시점은 NSC 이튿날인 2월 8일이다. 김규현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오전 홍용표 통일부 장관에게 ‘대통령 지시’라며 개성공단 폐쇄 방침을 전달했다. 직후 정부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회의를 열어 통일부 차원의 철수 대책을 기초로 폐쇄 세부 계획을 확정했다.

개성공단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당시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통일부는 박 대통령 지시를 받은 후에도 “철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폐쇄’ 표현을 ‘잠정중단’이나 ‘전면중단’으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모두 묵살됐다. 김 실장과 김 수석은 “대통령 지시를 변경할 수 없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통일부도 즉각 폐쇄에 동의했다.

북한 당국이 근로자 임금을 핵·미사일 자금으로 전용했다는 주장이 나온 정황도 미심쩍다. 당시 통일부는 “개성공단 자금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무관하다”는 공식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 통일부가 2월 9일 작성한 개성공단 폐쇄 관련 ‘정부성명’ 초안도 핵·미사일 개발자금 전용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정부성명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 이 문구가 최종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자금 전용 주장은 명확한 근거도 없었다고 소개했다. 혁신위는 당시 자금 전용의 근거 자료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 문건을 확보했다. 그해 2월 13일 청와대 통일비서관실이 통일부에 발송한 문서였다. 문건은 탈북민 진술 위주로 작성됐으며 첫머리에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단서까지 붙어 있었다. 각 탈북민의 북한 내 근무기관과 탈북 시점을 고려했을 때, 개성공단 자금 정보를 알 만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혁신위 발표와 무관하게 개성공단 재가동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폐쇄 당시와 달리 지금 상황에서 공단 재가동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 위반 논란이 불가피하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절반 이상이 섬유업체인데, 지난 9월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75호가 북한의 대외 섬유 수출을 막았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도 “개성공단 재개는 전혀 검토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개성공단은 북핵 문제의 진전 상황을 함께 봐야 한다. 지금 당장 공단 재가동 문제를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