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대구·전주… 익명의 발길
대구 ‘키다리 아저씨’ 1억대 수표
6년간 8억4000만원 남몰래 기부
“제 이름을 절대 알리지 말아주세요.”
매년 연말 ‘얼굴 없는 천사’ 혹은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익명의 기탁자들이 나타나 희망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 매년 이어지는 선행에 궁금증은 증폭되지만 익명의 기탁자들은 끝까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조용히 선행을 이어가고 있다.
28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대구모금회)에 따르면 매년 연말 거액을 기부하는 일명 ‘키다리 아저씨’가 올해도 찾아왔다. 최근 부인과 함께 대구모금회 관계자들을 찾은 60대 키다리 아저씨는 1억2000여만원짜리 수표가 든 봉투를 건넸다.
평범한 옷차림에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만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기탁을 하고 있고, 본인이 쓰고 싶은 돈을 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아껴 저축해 기탁금을 마련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대구 키다리 아저씨는 2012년부터 6년 동안 7차례에 걸쳐 8억4000여만원을 기부했다.
대구모금회 관계자는 “알리지 말라고 해서 자신을 감추는 이유를 더 묻지는 못했지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삶의 철학이 있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도 이날 얼굴 없는 천사가 찾아왔다. 주민센터에 한 중년 남성이 전화를 해 “주민센터 뒤 천사쉼터 나무 아래에 A4용지 박스 한 개와 빨간색 돼지 저금통 한 개를 가져다놨다”고 알렸다. 박스 안에서 나온 돈은 6027만9210원이었다.
박스 안쪽에는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힘든 한 해 보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내년에는 더 좋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내용의 쪽지가 들어 있었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도 전화만 하고 사라졌다. 이 익명의 기탁자는 2000년부터 18년 동안 19차례에 걸쳐 5억여원을 기탁했는데 주민센터 직원들은 매년 찾아오는 익명의 기탁자가 동일인일 것으로 짐작만 할 뿐이다.
전남 해남군에서도 얼굴 없는 천사가 라면 500박스(1000만원 상당)를 기탁했다. 2013년부터 해남군에 라면 수백박스를 기탁하고 있는데 라면 등을 전달하는 업체 측에 이름을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 완주군 용진읍과 정읍시 옹동면에도 백미(10년째)와 성금(5년째)을 기탁하는 얼굴 없는 천사가 다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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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전주=최일영 김용권 기자 mc102@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아직 살만한 세상] 당신은 누구십니까… ‘얼굴 없는 천사들’의 행진
입력 2017-12-2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