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국장급 협의 진전 없자
日 야치·李가 직접 협의 나서
비서실장 된 후에도 직접 챙겨
외교부는 ‘조연’ 검토의견만 전달
합의 이후 ‘위안부 함구’ 지시도
아베, 평창올림픽 불참 가능성
2015년 12월 28일 공식 발표된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정부 청와대 주도로 이뤄진 비밀협상이었다는 게 위안부 태스크포스(TF)가 내린 결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청와대 비서실장이 8차례의 한·일 고위급 협의를 지휘한 것으로 확인됐다. 양국 외교당국 간 국장급 협의는 ‘조연’에 불과했고, 고위급 협의가 시작된 이후로는 역할이 더욱 제한됐다.
위안부 문제 관련 한·일 국장급 협의는 2014년 4월 16일 시작됐다.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교섭 창구였다. 한국 정부는 국장급 협의에서 진전이 없자 2014년 말 고위급 협의를 병행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일본은 협상 대표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을 내보냈고, 한국은 박 전 대통령 지시로 이병기 당시 국정원장이 대표로 나섰다.
이 전 원장은 2015년 2월 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위안부 협의를 직접 챙겼다. 주무부처인 외교부는 고위급 협의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고위급 협의 결과를 전달받은 뒤 검토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TF는 이 전 원장을 직접 면담할 일정을 잡았지만 이 전 원장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이 불거지면서 무산됐다. 이 전 원장은 구속 전 TF 조사에 참여하겠다는 강한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이병기·야치 라인이 가동된 지 2개월 만인 2015년 4월 양측은 잠정 합의문을 도출했다. 일본 정부의 책임과 사죄, 금전적 조치를 포함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소녀상 이전 문제, 국제사회에서의 상호 비난 자제 등 최종 합의 내용 대부분이 이때 결정됐다.
취임 초부터 대일 강경노선을 취했던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들어 위안부 합의 연내 타결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TF는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에 부담을 느낀 미국 정부의 압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청와대는 합의 도출 이후 외교부에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오태규 TF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박근혜정부는 위안부 문제와 안보·경제 부문을 분리대응하지 못하고 위안부 외교에 매몰됐다”며 “미국을 통해 일본을 설득하려는 전략도 미국 내 역사피로 현상만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발표 이후 한·일 관계는 한층 험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양국의 최대 난제인 위안부 협상 경위를 공개한 것만으로 한·일 관계는 경색될 수밖에 없다.
TF는 위안부 합의의 성격을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로 규정해 재협상 여지를 열어뒀다. 하지만 정부가 일본 정부에 정식으로 재협상을 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재협상을 요구해도 일본이 거부하면 재협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양국 외교장관이 공동 발표하고, 양국 정상이 추인한 내용을 2년 만에 뒤집는 데 대한 외교적 부담도 상당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정부 입장을 한·일 관계 영향을 고려해 신중하게 정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우리 정부의 결정에 따라 일본 정부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평창 동계올림픽 불참을 선언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셔틀외교 복원 차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초 일본을 방문하는 것 역시 현실화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글=권지혜 기자 jhk@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朴 지시로 이병기 국정원장이 위안부 협상 지휘… “靑 주도 비밀협상”
입력 2017-12-28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