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드러난 굴욕협상… 비공개 합의로 진실 은폐
우리측 ‘되돌릴 수 없는 사죄’
당초 취지와 달리 합의에선
‘불가역적 해결’로 맥락 변경
외교부 삭제 의견 靑이 묵살
‘소녀상 이전 노력’ 언급은
日의 ‘구체적 계획’ 요구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와
한국이 해결책 제시한 모양새
2015년 체결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문구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었다. 그때까지 ‘불가역적’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처럼 북핵 문제에서나 주로 쓰이던 표현이었다. 특히 합의 이후 한국은 이 말을 ‘일본의 불가역적 사죄’로, 일본은 ‘위안부 문제의 불가역적 해결’로 제각기 해석하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가 27일 공개한 보고서를 보면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은 우리 측이 처음 거론했다. 2015년 1월 6차 국장급 협의에서 우리 측은 ‘불가역성을 담보하기 위해 내각 결정을 거친 총리의 사죄 표명’을 요구했다. 일본이 ‘되돌릴 수 없는 사죄’를 해야 한다는 피해자 단체 의견을 참고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위안부 협상의 중심축이 이병기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국장 간 고위급 협의로 옮겨지면서 말의 맥락과 의미가 교묘하게 틀어졌다. 일본 측은 그때까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해결’만을 주장했으나 2015년 2월 1차 고위급 협의에서 야치 국장이 처음으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연계해 요구했다.
‘불가역적’ 표현은 이렇게 맥락이 바뀐 채 2015년 4월 4차 고위급 협의가 도출한 잠정 합의안에 그대로 들어갔다. 결국 그해 12월 28일 공개된 최종 합의문에 포함됐다. 오태규 TF 위원장은 “한국은 ‘사죄’의 불가역성을 강조했는데 당초 취지와 달리 합의에서는 ‘해결’의 불가역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협상 과정에서 ‘불가역적’이라는 말이 미칠 부작용을 경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부는 청와대에 “국내적으로 반발이 예상되므로 삭제가 필요하다”는 검토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불가역적’의 효과는 책임 통감과 사죄 표명을 한 일본 측에도 적용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측은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앞에 ‘일본 정부가 재단 관련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라는 표현을 넣자고 일본 측에 제안했다. 일본 정부의 예산 출연을 확실히 하겠다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이 구절이 추가되면서 논란의 여지가 더욱 커졌다.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하는 즉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된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근혜정부가 일본과 합의를 체결하면서 소녀상 이전을 이면합의했다는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TF 보고서가 공개한 위안부 합의의 비공개 부분을 보면 우리 측은 일본에 소녀상 이전 문제와 관련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2015년 위안부 합의문에 들어간 표현과 같아 우리 측의 기본적인 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언급은 “소녀상 이전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계획은 무엇인가”라는 일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이 소녀상 이전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요구하자, 한국이 ‘관련 단체와의 협의’를 해결책으로 제시한 모양새가 됐다. 오 위원장은 “공개적으로는 소녀상 관련 내용을 그냥 일방적으로 얘기했지만 비공개 부분에서는 일본 측의 물음에 답변을 한 것이다. 내용은 같아도 (맥락이) 다르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그래픽=공희정 기자
‘불가역’ 우리가 먼저 거론했다 日에 되치기… ‘협상의 굴욕’
입력 2017-12-28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