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지기’ 한국 탁구 레전드
탁구선수권 결승 앞서 이벤트전
숨 막히는 접전 끝에 1대 1 무승부
유, 다리 사이로 서브 넣기 묘기도
27일 대구실내체육관에 선 남녀 탁구 레전드인 유남규(49) 삼성생명 탁구단 감독과 현정화(48)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의 표정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둘은 ‘2017 신한금융 한국탁구챔피언십 및 제71회 전국 남녀종합탁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에 앞서 이벤트 성격의 레전드 매치를 위해 탁구대 앞에 나섰다. 지도자가 아닌 선수의 입장에서 오랜만에 라켓을 잡은 두 감독은 전날 승리를 장담하던 여유로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자와 동료, 관객들의 시선을 모처럼 한몸에 받으며 경기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러운 듯했다. 두 감독은 경기 시작 전 워밍업부터 강하게 공을 때리며 신경전을 펼쳤다.
이날 대결은 여성인 현 감독이 3점을 먼저 얻고 시작했고 11점 2세트 승부로 펼쳐졌다. 낮 12시30분에 경기가 시작되자 현 감독은 굳게 입술을 다문 채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며 경기에 임했다. 유 감독도 웃음기 없는 표정에 현 감독의 스매싱을 막을 때마다 “하”라며 기합 소리를 내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1세트에 3점을 주고 시작했지만 유 감독은 금세 5-5를 만들었다. 팽팽하게 승부가 이어지던 11-11 듀스에서 현 감독이 과감한 속공으로 2점을 내리 내며 13-11로 1세트를 가져갔다. 2세트도 팽팽하게 이어져 5-5가 됐지만 유 감독이 긴 랠리에서 조금 더 집중력을 발휘했다. 유 감독은 2세트 경기 도중 한쪽 다리를 들고 그 사이로 서브를 넣는 묘기를 선보여 관중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현 감독의 실수가 이어지면서 유 감독이 11-7로 승리했다. 결국 레전드 매치는 1대 1 무승부로 끝났다.
경기를 마친 후 유 감독은 “예상보다 현 감독이 세게 나와 당황했다”고 말했다. 현 감독은 “2세트에서 체력이 떨어져 공격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환히 웃었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 유 감독은 남자 탁구 단식, 현 감독은 여자 탁구 복식에서 각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은 같은 부산 출신에 현역 시절 혼합 복식으로 호흡을 맞추며 89년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30여년 지기로 친해 한때 사람들이 둘 사이를 연인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이벤트전을 마친 후엔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오상은, 주세혁(이상 2012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과 당예서, 박미영(이상 2008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의 은퇴식이 열렸다. 한편 이날 대회 남자부에선 김동현이, 여자부에선 전지희가 탁구 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현정화 vs 유남규’ 명불허전
입력 2017-12-28 05:03